한국산업 3강에서 양강체제로 전환
2014-09-03 16:41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산업계는 최소한 3개사가 경쟁하는 업종이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었다. 3위 기업은 다크호스로 언제든 1, 2위 기업을 치고 나갈 수 있고, 이 때문에 1, 2위 기업들도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두 번의 격변을 넘어서며 국내기업의 3강 체제가 깨지고 있다.
지난 1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소식은 한국 조선 산업을 지탱해왔던 ‘조선 빅3’ 체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013년 연간 매출액을 살펴보면 현대중공업이 24조2827억원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중공업 14조7061억원, 대우조선해양은 14조800억원으로 2위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8조2347억원)을 합병하는 ‘통합 삼성중공업’의 매출액은 22조9408억원으로 대우를 제치고 현대중공업과 1위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규모로 커진다. 조선업은 국내 1위가 곧 세계 1위를 의미한다.
현대제철의 최근 움직임은 국내 철강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기존 전기로 시설에 고로 제철소까지 더해 상·하공정 체제(쇳물생산에서 제품 생산까지 일괄적으로 수행)를 완성한 현대제철은 현대하이스코의 냉연사업부문 인수에 이어 특수강 사업 진출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특히, 특수강사업은 지난해 충남 당진 제철소 내에 공장 착공에 이어 최근에는 매물로 나온 동부특수강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외형 확산은 그룹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건설, 현대로템과 함께 범 현대가에 속하는 현대중공업까지 막강한 ‘캡티브마켓(Captive market·내부 수요)’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수강 사업이 본격화 되면 현대제철은 중후판, 열연, 냉연강판, 배관, 철근, H형강 이어 나사, 못 등 쇠로 만드는 모든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포스코보다 더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된다. 이에 3위 업체인 동국제강은 사실상 3강 경쟁에서 현대제철에 밀렸으며, 포스코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1990년대 탄생한 IT제조업체중 유일하게 연간 매출액 1조원을 넘어서며 승승장구했던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은 결국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양대 기업과의 규모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기업회생절차를 통해 재기를 모색하고 있으나 당장 두 기업과 맞대결을 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
인터넷 포털 업계에서는 네이버 독주 체제에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법인 ‘다음카카오’가 나서면서 1강에서 양강체제로 바뀐 사례다. 네이버는 PC 기반에서 다수의 경쟁사들을 제치고 현재의 지위에 올랐지만 모바일 환경에서는 카카오의 위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향후 업계 판도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거리다.
산업의 양대기업 체제는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진행되고 있다. D램 사업 구조개편으로 현대반도체가 LG반도체를 인수해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로 출범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만 생존하고 있다.
대우그룹 해체는 다수의 업종에서 3강 체제 붕괴를 가속화 시켰다. 대우전자(현 동부대우전자)는 ‘탱크주의’를 내세우며, 삼성전자·LG전자와 각축을 벌였으나 그룹 해체로 새주인을 찾기까지 생존에 몰두하다 경쟁에서 밀려났다. 대우자동차는 GM에 매각돼 외국인투자기업이 됐다. 대우차의 GM 인수로 국내 자동차 산업은 한 지붕(현대기아차그룹) 아래에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경쟁을 하는 구조로 전환됐다.
재계 관계자는 “산업 초창기에는 업종마다 다양한 기업들이 존재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에서 도태된 기업이 늘어나 결국 상위 1~2위 기업이 전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는 건 어찌보면 순리다. 한국 산업도 이러한 흐름대로 구조개편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면서 “선두기업의 지배력이 크기 때문에 후발 기업들은 그만큼 성장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되지만 후발 기업은 차별화와 창의성으로 잠재시장을 깨우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