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화백 "나의 모든 예술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일종의 암시"
2014-05-15 09:25
미술비평가 심은록, '양의의 예술-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 대담집 발간
'미술시장 블루칩작가' 보다 '현존하는 한국현대미술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걸맞는 이우환(78)화백이다.
2007년 국내미술시장 컬렉터들을 단숨에 매료시키며 '컬렉션해야 하는 그림'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이 '돈에 휘둘리는'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에서 생활하며 세계무대로 뛰고 있는 그에게 한국에서 작품값으로만 평가받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었다.
'점 하나', '선 몇개'로 그려진 화폭이지만 추상이고 명상적이어서 '예술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알듯 모를듯 오묘한 그의 작품에 대해 그가 작정하고 입을 열었다.
"나의 모든 예술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일종의 '암시'입니다. 점은 그림이 아니라 그려지지 않은 여백을 인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표식일 뿐입니다"
책은 "예술은 시이며 비평이고 초월적인 것"이라는, 이우환이 평소 얘기해 온 '예술의 세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정리됐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회화나 조각은 일종의 재제시로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점들이 모여서 여러 형태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면, 그것을 철저히 추려 정리하고 정제시켜서 극히 일부만 내 손을 거치도록 하여 숨결이 느껴지게 재제시하는 작업입다."
책은 국내미술시장에서 인기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의 연작을 통해 캔버스의 네모난 점에서 시작된 이우환의 회화에 대해서도 살핀다.
이우환은 캔버스 위의 점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점을 봄으로써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잘된 그림에는 힘이 있어서 그려진것들 사이에 울림을 일으키기 때문에 여백이는 생기는 것입니다. 그려지지 않은 부분이 여백이 아니고, 그려진 것과 공간(그려지지 않은 것), 그 전체를 포함하고 그 주변까지 포함한 것의 상호작용에 의한 바이브레이션이 ‘여백 현상’입니다. 내가 해석하는 여백은 ‘현상학적인 여백의 현상’입니다. 여백은 '존재의 개념'이 아니고 '생성의 개념'입니다."
이에 대해 심은록은 "그의 그림이나 조각은 오브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주위 공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울려 퍼지는 공기이고 장소이며 작품은 대상 자체가 아닌 관계에 의해 열리는 여백"이라고 덧붙인다.
대담은 지난 2008년부터 작년까지 프랑스 파리에 자리한 이우환의 아틀리에에서 이뤄졌다. 이우환은 오는 6월 17일부터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서 초대전을 앞두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열린 공간을 위해 끊임없이 내부의 틀을 깨며 외부로 나아갈 것을 갈망하는 이우환은 어느 한곳에 뿌리내리지 않고 늘 밖의 세계를 향한다"며 "이 대화록은 우주적인 관점에서의 여백의 예술을 탄생시켜온 그의 영혼과 만나게 되는 하나의 오솔길"이라고 추천사를 썼다. 320쪽. 2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