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후 김섬경 할아버지 끝내 숨져

2014-04-08 15:20
자식들 만난다는 생각에 기력 회복했으나 다시 건강 악화

아주경제 오세중 기자 = 지난 2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건강 악화로 구급차에서 북녘 가족과 만남을 이어가며 재회의 의지를 불태웠던 김섬경(91) 할아버지가 이달 5일 끝내 숨을 거뒀다.

2월 20일 금강산에서 64년을 기다린 딸 춘순(68), 아들 진천(65) 씨와 재회한 지 44일 만이다.

김 할아버지는 6ㆍ25 전쟁통에 만삭이던 처와 어린 남매를 친척집에 두고 잠시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북쪽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후 생사조차 모르고 산 지 64년.


1차 이산가족 상봉 취재 당시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구급차에 실려 금강산으로 향했던 김 할아버지.

애당초 금강산행이 좌절될 수도 있었지만 자식들을 만나겠다는 간절한 의지였는 지 상태가 호전되면서 의사의 허락하에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장으로 향했다. 

상봉행사 현장에서 구급차 속 침대에 누운 채 자녀를 만났지만 결국 이튿날 건강 악화로 상봉을 중도에 포기하고 조기 귀환했고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제1차 이산가족 상봉단이 출발전 집합 장소인 속초에 모일 당시 구급차에 실려서 집결장소에 나타난 김섬경 할아버지. 당시 의사들이 금강산행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강한 의지로 기력을 찾아 결국 이산가족 상봉장인 금강산으로 향해 북한에 남겨진 아들과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자료사진>



지난 상봉 때 김 할아버지와 동행했던 남쪽 아들 진황씨는 8일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에게 부친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금강산에서 북녘 자식을 보시고 나니 그리움의 한을 놓으신 것 같다"며 "자식 된 도리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이 소식이 알려져 통일에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진황씨는 "통일이 되면 유골은 북녘 형제들에게 보내려고 한다"며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전할 길이 없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아버지는 금강산에 다시 가고 싶어했다"며 "64년의 한을 풀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덧붙였다.

상봉행사장에서 헤어지기 직전 북한에 있는 딸 춘순씨는 김 할아버지에게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되면 만나요"라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지만 결국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