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톡]'사랑해요 크레용팝' 미술관 울리는 팝저씨들의 함성
2014-03-12 09:51
작가 정연두 국내서 6년만의 개인전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13일부터 플라토서 전시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40대 중반의 한국 남자로서 뭔가 가슴 찡하게 공감하는게 있었어요."
미디어설치 작가 정연두(45)는 현장체험형 작가다. 지난 6개월간 걸그룹 '크레용팝'을 찾아다녔다. 아니, 크레용팝에 열광하는 30~40대 아저씨 팬층인 '팝저씨'들을 쫓아다닌게 정확하다.
'팝저씨'들과 함께 하면서 단순히 여자 아이돌에 열광하고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삼촌팬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됐다. “팝저씨들은 이들이 유명해지는 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어요.”
'팝저씨'는 크레용팝이 길거리를 전전하며 무료로 공연하던 무명시절부터 스타자리에 오르기까지 현장에서 크레용팝과 함께 땀 흘리고 응원하며 다져진 부성애와 전우애로 무장한 충성스러운 후원자들이다.
처음엔 나이먹은 남자들이 어떻게 이럴수 있는 당황했지만 날이갈수록 신나면서도 애잔함이 와닿았다. 팝저씨들이 무대를 통해 외치는 목소리 너머의 공명을 감지했다. "군대문화를 경험하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수많은 뎀와 역경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스스로의 힐링을 찾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히 단합된 모습로 나타난다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 결국 사회의 한 양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여서 매우 흥미로웠죠."
13일부터 서울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 '크레용팝과 팝저씨'들을 미술관에 끌어들였다.
크레용팝을 위한 전용무대를 설치했다. '크레용팝 스페셜'로 설치된 작품은 전시장 내 무대에 화려한 조명이 끊임없이 돌아간다. 무대는 텅 비었지만 무대옆에 마련된 스크린에서는 반주에 맞춰 굵직한 음성으로 크레용팝을 응원하는 '팝저씨'들의 '크레용팝 사랑해요'가 울려퍼진다. 스크린 반대편에는 '팝저씨'들이 제작한 다양한 응원소품도 전시됐다. 작가가 주목한 진짜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팝저씨'들이다.
국내에서 6년만에 여는 이번 작업은 "신나고 무거웠다"는 작가의 전시는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다.
'크레용팝 스페셜'이 "화려하고 함성이 가득하지만 무엇인가의 부재"를 느낄 수있는 작품이라면 또 다른 신작 '베르길리우스의 통로'는 벌거벗은 인간의 근원적인 내면을 바라보게 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을 경험한 단테의 '지옥의 문'은 21세기 디지털을 통해 '현대의 지옥으로 문'으로 거듭난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이끈 것처럼 정연두가 관객을 '지옥의 문'으로 안내하는 셈이다.
작년 일본에서 체류하던 중 만난 한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보이지도 않는 자신의 일상을 매일 카메라로 기록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가는 수개월에 걸쳐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모델을 섭외해 ‘지목의 문’에 있는 각각의 포즈를 하나씩 완성했다.
전라의 남녀노소 248명이 등장하는 로댕의‘지옥의 문’을 보며 작가는 “로댕이 인간의 포즈에 대해 얼마나 많이 연구했는지를 느꼈다”고 했다.
플라토 내 상설 전시된 로댕의 역작 ‘지옥의 문’ 앞에서 3D 영상기기 ‘오큘러스 리프트’를 눈에 대야만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작가의 상상력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부분은 아쉽다. 3D 영상기기 ‘오큘러스 리프트’기기의 상용화가 내년으로 늦춰지면서 전시장에서는 2012년 제작된 시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작가가 공들여 작업한 영상이 본래 취지만큼 구현되지 못했다. 오는 22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대화시간이 열린다. 전시는 6월8일까지. 일반 3000원. 학생 2000원. 1577-7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