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방중 앞둔 박 대통령에게 거는 큰 기대, 작은 바람

2013-06-04 15:56
중국 국립 우한(武漢)대학교 객좌교수 박정

이달 하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자주 중국을 오가며 한ㆍ중 양쪽의 지인들을 접할 기회가 많은 나는 요즘 한ㆍ중 정상회담에 쏠리는 각계의 관심이 비상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평소 생업에 바빠 정치에 관심이 없던 이들의 입에서도 전문가 못지않은 한ㆍ 관계의 현실논리가 술술 튀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준비하는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이 이러한 민심을 잘 살피고 무겁게 받아들일 때 회담의 성과는 물론 소통하는 새 정부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역대 정부가 출범한 이래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본보다 먼저 중국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수교 21년을 맞는 양국의 전략적 동반관계의 위상을 격상시킬 방안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경제협력 현안 그리고 북한의 도발 위협과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 협력의 구도 논의 등 예측 가능한 사안들이 폭넓게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2009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했던 ·미 동맹 미래비전과 같이 이 모든 양국의 이해관계를 중 미래비전에 담아 포괄적으로 합의될 것이라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전망했다. 논의될 사항들이 양국의 공통 현안이니만큼 결과적으로 성공적 합의점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한·중 양국의 바닥 민심과 기대는 사뭇 거리가 느껴진다. 큰 틀의 정치, 경제, 안보비전 협약도 중요하지만 연 700만 명에 달하는 한·중 인적 교류의 규모에서 보듯 이제 한국과 중국은 가장 호감이 가는 가까운 이웃으로 느껴질 만큼 모든 영역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생의 관계가 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은 지방정부 하급관리들까지 모두 나서 외자 유치에 열을 올렸고 개방된 기업 풍토 위에 세계 각국의 투자가 몰려 매년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이젠 어느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G2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세계 경제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으로 위상이 달라진 중국이 이제는 해외투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점도 경제외교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10여 년간 중국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중국 국립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중국의 변화와 빠른 성장을 지켜보았던 한 사람으로서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내 교민과 한국 기업인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대화 속에 들어 있는 몇 가지 바람들을 정리해 본다.

 

첫째, 연설을 중국어로 했으면 한다.

중국 사람만큼 감동을 잘하는 민족도 드물다. 북핵문제, 동북아 안보는 물론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중요성은 미국 못지않은 위치에 있다.

일본보다 먼저 중국을 방문하는 박 대통령의 배려도 그런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지난번 미국과의 정상회담 일정 중 박 대통령이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했을 때 국내에서 일부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상대국 국민에게 감동을 사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내 언론과 정치 분위기는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 일색인 반면 우리 정부와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매우 호의적이다. 인품이 겸손하고 중심이 반듯하며 중국 문화와 정치 현실을 잘 이해하는 지도자라고 그를 평가한다. 그런 중국인들에게 중국어 연설만큼 큰 감동은 없을 것이다. 상대국 문화와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 그보다 훌륭한 정치 수완은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확인받아야 한다.

과거 북한의 무력도발과 핵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이 터질 때마다 중국 정부는 항상 모호한 입장으로 보다 강력한 유엔 체제를 사실상 어렵게 해왔다. 그 결과 중국의 묵인 또는 비호 아래 북한은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등 무력도발을 서슴지 않았고 이젠 유일한 후견국 중국의 경고나 조언도 무시하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중국 언론들도 북한을 비판하는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응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셋째, 임진강 평화문화권 개발계획에 중국 투자 유치를 제안하라.

박 대통령 공약사업인 경기북부 임진강 특정지역개발계획은 임진강 주변 김포, 파주, 동두천, 연천, 포천을 잇는 평화문화권을 조성하는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이다. 분단 이후 버려졌던 임진강 주변 접경지역에 큰 희망을 주는 대형 프로젝트로서 환영할 일이다.

사업지역 중 임진강 하류 파주지역은 평탄한 지형이 많고 경의선 철도, 자유로와 국도1호선 통일로 등 기존 교통망이 잘 연결돼 있어 개성공단에 상응하는 국제평화공단(500만평 규모)을 조성하면서 특히, 중국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면 남북 긴장완화와 대중국 경제 교류에도 획기적인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이 정상화될 경우 북한 인력의 추가 투입을 유도해 중국과 남·북한의 인력이 어우러져 화해와 평화가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이 될 것이다. 또 공단 내에 중국의 국립대학 캠퍼스를 유치해 한·중 학술 교류의 장으로 삼는다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넷째,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를 제외하고는 90여 개의 대기업이 5년 사이 평균 37%의 하강국면을 맞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성 착시(錯視)’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전자의 매출에 가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는 경고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특히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중국 기업의 빠른 성장 이면에 갈수록 미래가 보이지 않는 우리 기업들의 시름이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방중 시 박 대통령이 직접 현지기업들의 고충을 살피고 중국 진출기업들이 회생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끝으로, 교민과 동떨어진 공관행정서비스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중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산업의 경우 진입장벽을 높여 교민들과 현지 진출기업들은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공관에서는 중재 노력은커녕 교민과의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불만이 팽배해 있다. 반면 다른 나라 공관에서는 자국 교민들의 실생활까지 챙기는 발 빠른 활동들을 하고 있어 우리 교민들은 이를 무척 부러워하고 있다.

지난해 말 베이징에 스모그가 심했을 때 서방국가 대사관에서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공기청정기나 스모그용 마스크를 자국에서 싸게 들여와 공급해주는 걸 보면서 우리 교민들은 깊은 소외감에 빠졌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교민들의 실생활 속으로 들어가 챙겨보는 모범을 보인다면 공관행정의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등 아태 중심 국가들이 일제히 새로운 지도자를 맞아 그들이 선출한 지도자의 정치적 역량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년의 짧은 수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장 괄목할 발전을 이룬 당사국이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비단 달라진 중국의 위상뿐만 아니라 세계 유일의 분단 지역인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 때문일 것이다. 또 동북아의 안보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국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쪼록 한중 두 정상의 만남이 모든 이들의 기대에 만족을 줄 수 있는 성공적 결실을 거두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