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주택 발에 치이는데…정부대책 '빈소리'만 요란

2012-12-03 20:46
대선후보 정책도 의구심…부동산 전문가 "정부차원 선제 대응 필요"

아주경제 이명철 기자=대출이자 갚기에도 벅찬 이른바 '하우스푸어'가 소유한 '깡통주택'이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금융권에게서 돈을 빌렸던 하우스푸어 계층이 무너지게 되면 가계 및 금융권 부실 등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깡통주택이란 집을 팔거나 경매 처분되더라도 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할 만큼 값이 떨어진 주택을 말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깡통주택과 하우스푸어 문제가 향후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영향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지 말자는 것이다.

다만,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모니터링과 지원 대상 선별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경매 내놔도 대출금 못갚는 집 수두룩

지난달 29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내 Q아파트(전용면적 200㎥)가 4차례 유찰 뒤 약 9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이 아파트 감정가는 22억원. 따라서 감정가 대비 낙찰가의 비율(낙찰가율)은 43%에 불과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매를 청구한 저축은행의 청구액은 약 14억5700만원이다. 집이 팔렸어도 채무금액보다 5억원이나 모자란다. 경매에 내놔도 대출금도 못갚는 깡통주택인 것이다.

깡통주택은 대출을 받아 비싼 집을 샀다가 집값이 LTV(주택담보대출비율) 한도(60%)보다도 밑으로 떨어지는 등 가치가 크게 하락한 것을 말한다. 경기침체로 거래마저 힘들어진 요즘 경매시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유정 지지옥션 연구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 높은 감정가를 받았다가 값이 떨어지면서 팔아봤자 빚도 못 건지는 깡통 아파트가 경매로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이 경우 채무자뿐 아니라 채권자와 세입자까지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 전반의 주택담보대출 현황을 정밀 조사했던 금융감독원은 최근 LTV 60%를 넘은 주택담보 대출자는 전체의 18.3%인 94만2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LTV 80% 초과 대출자도 4만1000명(0.8%)이나 됐다.

특히 대출액이 평균 경매 낙찰가율보다 많아 사실상 깡통주택으로 전락한 대출자는 1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깡통주택의 대거 등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집값이 하락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대출자가 빚을 갚거나 집을 처리해야 하는데, 집값이 떨어지고 거시경제가 불확실해 부채를 줄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직접 개입은 일러… 시장 활성화가 관건"

깡통주택 해결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은행권이나 금융당국에서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하우스푸어가 소유권은 넘기되 현재 집에 거주하면서 월세를 내는 방식인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임대)' 제도를 도입했지만 시행 한 달가량이 지난 현재 신청자는 단 한 명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은 경매로 넘어가게 되는 깡통주택에 대해 경매 3개월을 유예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경매 유예는 어차피 거래가 없는 이상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제18대 대선후보들의 정책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대선후보 정책에는 하우스푸어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 후보는 중산층, 다른 후보는 서민층에만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이 부족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깡통주택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전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당장 깡통주택 증가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향후 깡통주택 급증에 따른 '깡통 전세', '렌트푸어' 등 2차적인 사회적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직접적 조치는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시장 모니터링과 선별과정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원갑 팀장은 "혹시나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라며 "렌트푸어도 있는데 하우스푸어까지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하우스푸어와 깡통주택 해결을 위해서는 거래시장 활성화가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경기가 살아나서 자연스럽게 매매가 이뤄지면 깡통주택 문제도 해결되게 마련"이라며 "정부도 금리·상환조건 완화 등 간접적 지원을 해주면서 거래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