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에 놀란 부자들’ 안전투자로 급선회

2011-10-09 10:25

1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했던 고액자산가들의 투자전략이 바뀌고 있다.

9일 연합뉴스가 국내 증권사 5곳의 프라이빗뱅커(PB)를 통해 고액자산가의 재테크 경향을 분석했더니 이들은 8월 이후 주식 같은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옮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자 고액자산가들은 주가지수의 추가 하락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는 전략을 쓰기도 했다.

◇“위기 오래갈 것 같다” 위험자산 관망 최근 한국투자증권 강남센터의 윤재원 차장이 고액자산가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위기가 얼마나 더 지속할 것인가’다.

8월 이후 유럽 재정위기와 세계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자 수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고액자산가들이 외부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전까지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을 위주로 한 주식 매매나 원자재 상품이 인기를 끌었지만, 8월 이후에는 매력이 뚝 떨어졌다. 부자들이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매하지 않은 탓이다.

삼성증권 김홍배 SNI코엑스인터컨티넨탈지점장은 “고액자산가들이 변동성 장세 속에서 자산 분배를 재정비하고 있다. 이제는 위험자산 대신에 안전자산에 관심을 두면서 채권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센터 김재훈 부장도 “9월 들어서는 주식 투자를 많이 안 하려고 한다. 유럽 사태가 길게 갈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개별 종목 투자를 꺼리는 편이다”고 최근의 투자 성향을 전했다.

금융시장 분위기가 급속도로 나빠져 월등한 수익률을 내는 투자상품이 없다는 것도 고액자산가들의 고민거리다.

윤재원 차장은 “매력적인 투자상품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이 괜찮았는데 이마저 가격 조정을 받으니 특별한 대안 투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위험자산에 관망 자세를 취하면서 현금 비중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투자전략이 됐다.

신한금융투자 강남센터 전현진 PB팀장은 “차라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에 현금을 갖고 있다가 증시 바닥이 확인되면 들어가자는 고객들도 많다”고 말했다.

◇ 원금보장상품 선호 커져고액자산가들은 욕심을 줄이고 정기예금보다 1~2% 정도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원금보장형 상품에 주목하고 있다. 주식보다는 채권 비중을 키우고 있다. 주식투자를 하더라도 분산투자 효과가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집중한다.

김홍배 지점장은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추세에 맞춰 채권비중이 70% 이상이고 나머지도 비교적 안전한 주가연계증권(ELS)으로 운용되는 상품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형 상품 중에는 국채는 물론이고 달러표시채권이나 외국 채권도 인기를 끈다. 김재훈 부장은 “하이닉스나 우리금융 달러표시채를 고객들이 10% 넘는 원·달러 상승효과와 국채 고정금리의 혜택을 동시에 봤다. 금리가 연 6% 정도인 이탈리아 국채 선호도도 높다”고 밝혔다.

전환사채(CB)나 교환사채(EB)에서 기회를 찾기도 한다. CB나 EB를 활용하면 주가 침체기에는 확정금리를 받는 채권의 이점을 누리다가 주가가 오를 때 발행회사나 제3기업 주식으로 바꿔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다.

다음 투자기회가 나타날 때까지 잠시 돈을 보관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은 단기 확정금리 상품을 애용한다. 대우증권 갤러리아지점 서재연 마스터 PB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나 예금, 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3개월 사모펀드(연 4% 지급)의 선호도가 가장 높다”고 말했다.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의 투자자들은 여윳돈을 가지고 단기매매에 나선다. 상장지수펀드(ETF)나 낙폭이 큰 대형주가 주된 매매대상이다. 이 경우 투자기간은 대개 며칠에서 몇 주 정도로 매우 짧은 편이다.

대우증권의 한 50대 후반 투자자는 8월 초 급락장이 시작되자마자 인버스 ETF를 사서 20%가량 차익을 실현했다. 그 후 코스피가 1,700 밑으로 떨어졌을 때 전기전자(IT)와 금융주 중에 대형주를 골라 매수하고 주가 상승 때 팔아 추가 수익을 올렸다.

◇소액투자자 적립식펀드, ELS가 대안수억원의 자산이 없다고 해서 투자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적은 종자돈으로도 좋은 투자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PB들은 지금 같은 변동성 장세에서 소액투자자들에게 가장 좋은 투자전략은 역시 ‘적립식 투자’라고 입을 모았다.

윤재원 차장은 “직접투자뿐 아니라 펀드 같은 간접투자도 철저히 분산투자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지수’를 추종하는 ETF도 좋은 대안이다. 현재 코스피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으로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분할 매수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이밖에 ELS도 권장 대상이다.
김홍배 지점장은 “이런 때일수록 모든 투자를 중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확실한 쪽에는 투자해야 한다. 적립식 펀드, ELS 등이 괜찮다”라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