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힌 현대.기아차의 적벽대전"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
-적벽대전 당시 제갈공명-봉추팀의 ‘고육계-연환계’ 대승 이끈 지혜 상통 평가
# 장면1= AD 250년 중국 삼국시대. 천하통일을 목표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 나가던 위나라의 조조 승상이 이끄는 100만 대군이 손권-유비 연합군을 치기 위해 적벽에 진을 쳤다. 오나라 손권-형주 유비 연합군의 군사력은 모두 합해도 5만에 불과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형세. 싸움은 해 볼 필요도 없었다.
# 장면2= 2008년 12월 현대자동차 글로벌상황실. 시시각각 전 세계의 자동차시장 상황이 잇따라 급보로 타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유럽, 중동지역 자동차 판매량 30~50%씩 감소 시작’, ‘포드 등 빅3 미국 정부에 구제금융 신청했으나 의회 제동으로 난항’, ‘2009년 세계 자동차기업들 파산 도미노 확산 가능성’…
약 1800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칠흑(漆黑)의 상황. 적벽대전의 전야와 글로벌금융위기 앞에 놓인 현대차의 상황은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절체절명의 난국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절묘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면 반드시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제갈공명의 지혜는 적벽대전을 대승으로 역전시켰고, 이 시대 현대차의 전략에 발현되고 있다.
시장점유율 급락으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해 하고 있는 벤츠, BMW, 포드, 크라이슬러 등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들과 달리 현대차는 ‘리턴 어슈어런스(return assurance) 프로그램’이라는 과감한 카드를 던졌다.
현대차를 구입했다가 직장을 잃으면 되사준다는 현대차의 마케팅전략이 지난해 말부터 실행될 때만 해도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1월 미국시장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GM, 포드, 크라이슬러, 도요타가 전년 대비 55~32% 감소한 반면 현대차는 오히려 14.3%나 증가했다. 캐나다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현대차는 전년 동기대비 18.9% 늘어난 4607대를 팔았고, 기아차도 1825대를 팔아 1%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 덕분인지 최근 발간된 미국의 유력 자동차 구매가이드 책자인 ‘카북 2009년판’에서 현대·기아차의 8개 차종이 ‘최우수 추천차종’에 선정됐다.
게다가 이달 1일 열린 2009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 개막쇼와 본경기 중계에도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하는 등 더욱 공격적으로 ‘불황시장 역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현대차의 이 같은 불황 마케팅 전략은 자동차 회사들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MS), 코카콜라, 소니 등 글로벌 전자, IT, 제조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차 미국법인 관계자는 “현대차의 1월 실적이 각 매체에 보도된 이후 업종을 가리지 않고 세계적인 기업들이 비결을 물어오고 있다”며 “아직은 초창기이기 때문에 실적에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실행해나가고 있지만, 일단 현대차의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늘날 현대차의 파죽지세(破竹之勢)는 적벽대전 당시의 역전승을 연상시키고 있다.
위세만 믿고 승리를 낙관하던 조조 진영을 격파한 것은 손권-유비 연합군의 연환계(連環計)였다. 유비의 책사 제갈공명은 100만대군 대 5만군사라는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화공(火攻)이 최상의 전략이라고 판단, 수백 척의 배와 상대 진영을 일시에 태워버리는 전략을 택했다.
조조군의 밀사인 장간을 역이용해 상대편 수군대도독 채모의 목을 치게 하고, 방통을 보내 조조군의 배들을 쇠사슬로 묶도록 하는 등 세밀한 후속 작전도 펼쳤다. 기다리던 남동풍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연합군은 기습적으로 진군을 개시, 적벽을 불바다로 만들고 추격전을 가해 조조군을 산산조각 냈던 것이다.
적벽대전은 손권-유비 연합군의 대승리로 끝이 났지만, 현대차의 글로벌전쟁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의 불황마케팅이 1월은 놀라운 실적으로 나타났지만 앞으로 지속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 ‘실직시 역구입 마케팅’이 부실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의 대대적인 불황마케팅을 지켜보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전략 담당 임원들은 “매우 독특하고 공격적인 전략은 틀림없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조심스런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동차는 고정비 지출이 많은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최근과 같은 불황에는 수익성이 낮더라도 가동이 중요하다는 점, 미국인들의 생활 특성상 역구매 요구가 예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 현대차가 이미 보험사 등과 충분히 손실분 보완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 등이 긍정적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북미지역 올해의 차 선정’ 등 자동차 품질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현대차의 대선전이 ‘반짝 효과’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전무는 “전 세계적 불황 속에서 현대차가 대대적으로 약진하기 시작하고 ‘빅5’였던 휴대폰시장이 노키아-삼성전자-LG전자로 재편되는 등 한국기업들에게 글로벌 위기가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상황”이라며 “모든 분야의 기업들이 위축 심리를 털고 도약해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변해정기자 hjpyu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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