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완성도? 둘 다 잡을 순 없을까?"

2008-06-12 09:42
사전 제작 드라마 잇단 참패.."반 사전 제작으로 가야"

   
 
 

"과도기일 뿐 계속돼야 한다" vs "한국 실정에는 적합하지 않다"

    SBS TV의 4부작 드라마 '도쿄, 여우비'가 10일 시청률 5.8%(AGB닐슨미디어리서치)로 막을 내리면서 사전 제작 드라마에 대한 고민이 또다시 시작됐다.

    '내 인생의 스페셜', '비천무', '사랑해', '특수수사일지: 1호관 사건' 등에 이어 지상파 방송사에서 선보인 또 한 편의 사전 제작 드라마가 저조한 성적표에 고개를 떨구며 퇴장한 것이다.

    일명 '쪽대본'과 '링거 투혼', '열린 결말' 등으로 상징되는 국내 TV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사전 제작 드라마는 제작진이 기획 의도를 유지하고 완성도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선보인 100% 사전 제작 드라마들의 시청률은 참담하다. 시청률이 작품성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드라마를 계속 제작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방송사든, 제작사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전 제작 드라마는 장기적으로는 꼭 정착시켜야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상향 같은 것일까?   

     ◇트렌드 급변하는 한국 사회

    사전 제작 드라마들이 시청률에서 참패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제작 완료 시점과 방송 편성 시점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지적된다.

    '도쿄, 여우비'는 1년 만, '비천무'는 만들어진 지 3년 만에야 전파를 탔다. 오죽하면 배우들이 방송을 앞두고 열리는 홍보 기자회견에서 "촬영한 지 오래돼 내용이 가물가물하다"고 할 정도.

    이런 드라마는 트렌드와 이슈가 금세 변하는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설 자리가 너무 좁다. 드라마 주인공이 입고 나온 옷과 액세서리가 다음 날 시장에 깔리는 사회에서, 1~3년 전에 제작된 드라마는 관심의 대상이 되기 힘든 것.

    '사랑해', '비천무', '도쿄, 여우비'를 모두 관리한 SBS 드라마국의 김영섭 CP(책임프로듀서)는 "현대극, 특히 미니시리즈 드라마는 시청자와 같은 시간을 호흡해야한다. 그래서 뭐 하나라도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주인공이 입고 나온 옷조차 이미 흘러간 유행이라면 그만큼 관심을 끌기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혼부부 세 쌍의 모습을 그린 '사랑해'의 실패는 MBC TV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우리 결혼했어요' 코너의 성공과 대조된다. 2008년의 시청자들은 익숙한 스타일에 결말까지 나온 '사랑해'가 아니라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연예인들이 펼치는, 가짜인 줄 알지만 진짜같은 신혼부부의 모습에 열광하고 있다.
 

   
 
 

◇시청자는 드라마의 '보이지 않는 손'    

    '쪽대본'과 '링거 투혼'은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의 고질적 병폐로 늘 지적된다. 하지만 성공한 드라마는 예외없이 이렇듯 아슬아슬한 제작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 방송 불과 몇 분 전에야 완성 테이프가 방송국에 전달되는 현상은 그 역사가 유구할 뿐만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왜 그럴까.    

    2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난달 종영한 SBS TV '온에어'의 김은숙 작가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이 드라마를 준비해 초반에는 촬영에 여유가 있었지만 결국 방송을 시작하고나니 아무래도 시청자와 호흡하면서 대본을 집필하게 된다. 많이 보라고 만드는 드라마인만큼 시청자들의 반응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비단 김작가만의 생각이랴. 실제로 시청자들은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적극 개진하고 있으며 이런 의견이 드라마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김영섭 CP는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의 패션 스타일에서부터 스토리 라인까지 모두 '참견'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제작이 완료된 드라마에 대해서는 흥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우리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결말에 자신들이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반(半) 사전 제작이 이상적

    그렇다면 사전 제작을 포기해야할까.

    '도쿄, 여우비'의 주연을 맡은 김태우는 "배우의 입장에서 드라마 제작이 사전 제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준비를 더 많이 할 수 있고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다"면서 "한국 사전 제작 드라마는 아직 과도기다. 편성 등 여러 사정 때문에 시청률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완성도를 위해서는 계속 사전 제작 시스템을 지향해야한다"고 말했다.

    케이블채널 채널CGV에서 현재 방송 중인 '리틀맘 스캔들'은 방송 전 시즌 1과 2가 동시에 제작ㆍ완료됐다. 이를 연출한 장두익 PD는 "시즌 1과 2를 동시에 제작함으로써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었고, 스토리의 일관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완성도와 시청률이 비례하지 않는 한 사전 제작 드라마의 의미는 퇴색하기 마련.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드라마계에서는 반(半) 사전 제작을 제안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50% 정도는 방송 시작 전에 미리 제작된 상태에서 출발해야 시청자와의 호흡을 유지하면서 작품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것.

    '주몽'에 이어 9월 KBS 2TV를 통해 방송될 '바람의 나라'를 제작하는 초록뱀미디어의 김기범 대표는 "우리나라 사정에서는 반 사전 제작이 딱 좋은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완전 사전 제작을 위해서는 대형화한 제작사들이 충분한 자금력과 제작 여건 속에서 작품을 만들고, 완성된 작품을 내다 팔 수 있는 충분한 시장이 먼저 형성돼야한다. 방송사 편성 등의 시장이 불안정한 국내 현실 속에서 완전 사전 제작은 아직 무리"라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반 사전 제작이 최근 적극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