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에 빠진 한국경제

2008-06-09 17:34
내수위축 부채급증 증시불안 정책부재

한국 경제로 갈수록 궁지로 몰리고 있다.

고유가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소비심리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가계부채까지 급증하면서 서민 경제의 부담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계속되는 외부 악재로 증시가 연일 출렁이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일단 경기부양보다는 물가안정 쪽으로 경제 운용 방향을 선회했지만 현재 위기를 타개할만한 묘수가 없는 게 고민이다.

◆ 소비심리 급랭 가계빚은 급증 = 고물가로 서민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경기를 살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기대지수는 전월 대비 8.2포인트 하락한 92.2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0년 11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소비자 기대지수가 100 아래로 떨어지면 소비를 늘리겠다는 가구보다 줄이겠다는 가구가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달 소비자 기대지수는 전 소득계층과 전 연령대에서 모두 하락해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음을 드러냈다.

김영노 통계청 분석통계팀장은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9%로 크게 오르면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 같다"며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내수도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올 들어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올해 1분기 가계부채가 총 640조4724억원에 달해 지난해 말보다 무려 10조원 가량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이 9조5840억원이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서민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용 한은 경제통계국 과장은 "신용협동조합과 국민주택기금 등의 가계대출이 급증했다"며 "아직은 개인부분의 금융자산이 금융부채를 웃돌고 있는 상황이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고유가에 증시로 출렁 =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유가는 국내 증시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9일 코스피지수는 전일대비 23.35포인트(1.27%) 하락한 1808.96으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도 7.09포인트 하락한 637.00을 기록했다.

이날 증시가 약세를 보인 것은 지난주 배럴당 120달러대로 하락하며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던 국제유가는 이틀새 무려 16달러나 폭등하며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는 그동안 이어진 고유가 상황에도 비교적 잘 버텨왔지만 최근의 유가는 국내 증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유가 급등과 미국의 신용위기를 비롯한 각종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국내 증시가 조정 국면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추가 하락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윤세욱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반적인 투자 심리가 좋지 않아 단기적으로 코스피지수가 175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증폭 애타는 정부 = 국내 경제연구기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속적으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0%에서 각각 4.7%와 4.9%로 하향 조정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0%에서 4.8%로 낮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2%에서 4.3%로 0.9%포인트나 낮춰 잡았다.

정부 내에서도 현재 경기 상황이 지속되면 올해 5% 성장도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고물가 속에 성장은 정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국내 경제를 덮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고유가가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와 투자가 동반 부진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국내 경제 상황이 위기 국면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당분간 성장보다는 물가 안정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금리 및 환율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최중경 재정부 제1차관도 최근 "외환시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서민생활이 어려워진 것이 중요한 고려 요소"라고 말해 물가 안정이 당면 과제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난국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는 4조9000억원 가량의 추경을 편성해 서민 경제 안정에 쓰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8일 발표한 고유가 대책에 대해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1인당 최고 24만원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그 정도는 기름 두 번 넣을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며 "유가가 더 오른다고 액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강 장관도 "유가가 배럴당 170달러를 넘어서면 모든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해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고유가 대책이 한시적인 것임을 자인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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