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털 난 놈’, ‘양심 엿 바꿔 먹은 놈’. 어릴 적엔 양심이란 단어를 일상대화에서 늘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일상에서 양심이란 단어가 사라졌더군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올해 첫 신간 '양심'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양심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최 교수가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여러 일화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친구들을 제주 바다로 돌려보낸 일, 호주제 폐지에 앞장선 일,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대운하 사업에 반대한 일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그는 단호히 말했다. “양심의 용도 폐기는 불행한 일이다”라고.
공평+양심=공정
최 교수는 14일 서울 중구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양심'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사회가 양심을 다시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양심이란 단어가 왜 사라지고 있을까 고민했다. “언어학자들은 사회에서 언어가 사라지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하더라. 단어의 쓰임새가 아예 없어졌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되는 것이다. 양심을 대체할 단어가 없더라. 억지로 찾아낸 게 ‘쪽팔리다’였다.”
최 교수가 양심을 강조하고 나선 데는 '공평+양심=공정'이란 그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던 공식이 자리한다. 양심을 빼고는 공정을 얘기할 수 없는 셈이다.
그는 온라인상에 떠도는 ‘야구장을 들여다보는 만화’로 이를 설명했다. “키 큰 사람, 중간 키 사람, 키 작은 사람. 세 사람 모두 박스를 받아서 그 위에 올라서면 중간 키 사람은 머리가 담장 위로 올라가서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지만, 키 작은 사람은 여전히 못 본다. 제일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에게 박스를 양보하면 키 작은 사람이 박스 두 개 위에 올라서니, 세 사람 모두 담장 위로 경기를 볼 수 있게 된다. 똑같은 박스를 모두에게 준 건 공평, 제일 작은 사람에게 박스 두 개를 준 건 공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가장 키 큰 사람이 박스를 내어주는 ‘적극적인 양보’와 함께 중간 키를 가진 사람의 ‘양심’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간 키를 가진 이들은 양쪽을 살피면서 마음속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다. 키 큰 사람의 양보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은 중간에 있는 그 사람이다.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뭔가를 공유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불편한 마음이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양심' 말하는 사회로 되돌려야…"사회 이끄는 이들 읽길"
최 교수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현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와 손을 잡고 내려오던 딸의 손을 떼어낸 뒤 딸의 손을 물티슈로 닦던 한 엄마의 모습을 회상했다. 우리 사회가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어려서부터 갖고 있는 심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할 텐데, 아이들이 그런 심성을 표현하려고 하면 ‘공부나 해’라면서 자꾸 괴물을 만드는 게 아닐까. 포유동물로서 갖고 있는 본성을 지켜내게 하는 건 결국은 사회 분위기일 텐데. 양심이란 단어가 사라져가는 이 분위기를 끌고 가면 우리 사회의 삶은 점점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종종 양심을 운운하면서 사는 사회로 되돌려야 하지 않을까 해서 이 책을 만들었다.“
특히 현 시국에서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이 '양심'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보길 권했다. “정치인들 입에서 양심이란 단어가 튀어나오더라. 흥미롭다. 어떤 분은 제가 생각하는 양심의 기준에 맞춰서 얘기하는 분도 있는 것 같고, 어떤 분은 저런 단어를 언급할 자격이 없어 보이더라. 그러나 긍정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랏일을 책임지는 분들이 제가 생각하는 양심의 기준에 따라서 움직여준다면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 교수는 세상은 다 속일 수 있었어도 딱 한 명은 못 속이는 것, 바로 자기 마음의 양심이라고 했다.
“양심이란 게 참 어려운 거죠. 철저하게 개인 기준에서 양심을 저버려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세상을 다 속였는데 딱 한 명은 못 속여요. 그 한 명이 바로 자신이에요. 자신을 못 속여서 불편해 하다가, 올바른 선택, 올바른 행동을 하는 거예요. 우리 사회를 이끌고 계신 분들이 '양심'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