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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상의 팩트체크] 투란도트는 어쩌다가 '캐비어 알밥'이 됐나

2024-12-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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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운영 역량…결국 31일 공연 취소

예상된 '인재'…우려가 현실로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포스터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포스터


제작비 200억원, 티켓 가격 최고 100만원.
 
‘어게인 2024 투란도트’(이하 투란도트)는 개막 전부터 입이 딱 벌어지는 제작비와 티켓 가격으로 화제를 모았다. 플라시도 도밍고, 마리아 굴레기나 등 세계 최정상급의 참여를 발표하며, “가능할까?”라는 의문 섞인 기대감을 일으켰다. 계획대로 순항한다면, ‘100만원이 아깝지 않다’는 분위기도 상당했다. 그리고 제작진은 예고대로 화려한 출연진들을 모으며 오페라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공연이 시작되자, 연출가와 제작사 간 갈등, 관객에 대한 배려 부족이 도마 위에 오르며 세계 정상급 출연진들의 빛을 퇴색시켰다. 온라인에서 “캐비어로 알밥을 만들었다”며 투란도트를 두고 ‘캐비어 알밥’, ‘다금바리 생선까스’ 등 조롱 섞인 비판이 이어진 배경이다.
 
참담한 결과를 두고, 공연 업계는 예상됐던 ‘인재’라고 지적했다. 초대형 프로젝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관리하거나 해결하지 않고, 공연 기획사가 뒷짐 지고 있다가 사태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뒤늦게 문제를 무마하는 식으로 접근하면서 결국 관객들의 신뢰를 완전히 저버렸다는 설명이다.
 
한 공연 업계 관계자는 “하나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나와서 100억원, 200억원 운운했다”며 “수시로 캐스팅을 바꾸면서도 변경사항에 대해 공지를 단 한 번도 안 했다. 고객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미숙한 운영 역량…결국 31일 공연 취소
지난 22일 막을 올린 ‘투란도트’는 31일 예정된 마지막 날 공연을 취소했다.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를 맡고, 마리아 굴레기나, 에바 플론카 등 초호화 출연진이 무대를 빛냈지만, ‘서비스 빵점’이란 관객들의 혹독한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미숙한 역량은 좌석 운영 등 공연 운영 전반에서 나타났다. 개막 당일인 22일에는 좌석 배치도가 예매 때와 달라지면서 관객들의 환불 요구가 빗발쳤고, 공연은 20분 넘게 지연됐다. 또 단차가 없어서 관객 일부는 무대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LED 영상이 투사되는 무대 위 기둥들이 시야를 방해했다.
 
개막날 공연을 코앞에 두고 연출을 맡은 다비데 리버모어가 “나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깜짝 하차를 선언한 데 이어, 29일에는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기로 했던 파올로 카리냐니 역시 하차에 동참했다. 이러한 하차는 극히 드문 사례로, 프로젝트 전반 운영 능력 부족과 내부 갈등 관리 실패를 방증한 것이란 게 전반적인 평가다.
예상된 '인재'…우려가 현실로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D홀 앞에서 열린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 오페라에 박현준 예술총감독 지휘자 호세 쿠라 및 출연진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D홀 앞에서 열린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 오페라에 박현준 예술총감독, 지휘자 호세 쿠라 및 출연진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부 관객들은 ‘오페라 투란도트 피해자 모임’ 오픈 채팅방을 만들고, 환불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불만이 폭주하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 공연 업계 관계자는 ‘예상된 인재’라고 지적했다. “전문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이뤄지는 공연은 (준비가) 2~3배는 고단하다. 고객을 위한 편의장치가 없는 박스를 빌려서 공연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란도트는 감상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었다. 이번 파행은 굉장히 드문 일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들었다. 이 한 건으로 인해서 공연업계가 후진 업계처럼 보여 속상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갑자기 중계가 잡힌 경우 카메라를 놔야 하는 좌석이 이미 팔린 경우가 있다. 영향을 받는 좌석이 많아야 10개 수준이더라도, 그 좌석을 구매한 10분 모두에게 개별 연락하고 상급 좌석으로 올리거나 옆 좌석으로 옮기는 식으로 다양한 옵션을 제시한다. 이번 사태처럼 수많은 좌석이 영향을 받는데도 사전에 고지조차 하지 않은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평론가는 애초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팽배했던 게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상암경기장 투란도트도 당시 논란이 많았다. 코엑스는 정식 공연 시설이 아니어서, 음향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좌석 배치 등 공연 준비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을 것 같단 인상이 있었는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또 과거 20년 전과 지금은 공연계 상황이 다르다. 많은 이들이 해외에서 유명 가수나 프로덕션을 보고 왔다. 정상급 가수를 초대하는 게 의미가 있긴 하지만, 이벤트성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평론가는 이벤트성 공연이 오히려 공연 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벤트성으로 치고 빠지는 식의 공연들이 기업체의 후원을 상당 부분 갖고 가면, 실질적으로 지원할 때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단체나 기획사들이 피해를 보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연을 기획한 이들이 애호가들에게 수준 높은 무대를 보여주겠단 사명감으로 기획했는지, 아니면 그럴듯한 공연을 했다는 티를 내면서 이득을 얻으려는 데 무게를 뒀는지 신중하게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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