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소추안 가결 등 정치 격동이 심화하고 있는 한국 정세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며 한국의 현실을 자국에 비추어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비상계엄이 발생한 3일 밤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정국 혼란상을 실시간으로 전함과 동시에 이 같은 현상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함의를 잇따라 내어놓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5일, 지난 총선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배경에 북한과 관련된 세력의 부정이 개입됐다는 윤석열 대통령 주장이 “일부 보수 성향 유튜버와 극우 단체 주장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윤 대통령이 이 같은 이유로 비상계엄을 발령하고 국회에 군대를 보내 선관위에 진입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태”라고 비판했다.
닛케이는 이와 관련해 스웨덴의 독립조사기관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가 3월 발표한 ‘자유민주주의 지수’를 소개하면서 “한국은 179개국 중 47위로 이전의 28위에서 크게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윤 정권의 야당에 대한 태도와 언론의 자유 위축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선거를 둘러싼 음모론이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극단적인 주장과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정보를 증폭시키기 쉬운 소셜미디어(SNS)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한다는 진단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일본에서도 지난달 ‘갑질 논란’에 휩싸여 지방의회 불신임 결의를 받은 뒤 사임한 사이토 모토히코 효고현 지사가 다시 선거에 출마해 재선되는 이변을 연출한 사례가 있다. 선거 운동 초기에는 비판적인 분위기가 강했지만 사이토 지사는 SNS를 통해 의혹들을 전면 부정하는 등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면서 단시간 내 지지 세력을 키워냈고, 결국 역전에 성공했다.
아사히신문 역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다음 날 서울발 기사에서 이번 사태의 배경과 함께 일본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짚었다.
아사히는 “국회의 해제 요청으로 비상계엄은 약 6시간 만에 해제”됐고, “탄핵소추는 결국 탄핵을 요구하는 강한 여론과 여당 의원 일부도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전하며 “많은 고난 끝에 시민이 쟁취한 이 나라(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든 버텨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사태의 배경에는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혁신)의 격렬한 이념 대립이 초래하는 사회의 분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것을 더욱 첨예화시키는 SNS의 영향도 크다”고 덧붙였다.
아사히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사회의 분열이 진행되고 있어 언제 과격한 행동이 일어날지 모른다. 일본도 남의 나라 일이 아닐 것이다”라며 “다른 의견을 힘으로 배제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이 사태를 계기로 그 점을 다시금 떠올려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이 밖에도 일본 매체와 여론은 한국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평화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습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쿄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일본인 여학생(21)은 아주경제에 “비상계엄이 내려진 직후 한국 국민들과 국회의원들이 의회와 거리로 순식간에 모여드는 장면이 놀라웠다. 일본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마이니치신문은 “이번 탄핵소추를 둘러싼 시위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이돌 콘서트에서 사용되는 펜 라이트(응원봉)를 K-팝에 맞춰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1차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회 주변에 모인 군중 가운데 약 20%가 10~20대 여성이었다”는 서울시 자료를 인용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헌법에는 비슷한 (계엄) 규정이 없고 정치 구조도 크게 다르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겹쳐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