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에 초대형 K-병풍이 펼쳐졌다. 현대적 감각을 더한 색동과 왕가를 상징하는 금빛과 은빛으로 수놓은 호랑이, 학, 거북이 등 십장생의 동물들이 공항을 지나는 모든 여행객의 안전한 여정과 행복을 기원한다. 인천공항이 한국의 복(福)을 전하는 문화의 길이 된 것이다.
27일 찾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T2) 4단계 확장 구역에서는 올 겨울 첫눈이 덮인 승재정을 중심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담긴 파빌리온들이 긴 복도를 따라 이어졌다.
동편서 불어온 '바람의 색동'…십장생들이 게이트 안내
동편에서는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만났다. 실외 정원에는 창덕궁 정자를 그대로 재현한 승재정이 자리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시설 벽면에는 전통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화려한 그래픽들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그는 공항이 지닌 ‘밝은 기운’을 강조했다. “공항은 출발을 기다리는 설렘 등의 감정이 있는 공간이다. 공공디자인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기운을 여객들에게 드리고자 했다. 기물, 동물 등은 별도로 스케치를 한 게 아니다. 우리 기록에 담긴 이미지들이다. 스토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복이란 큰 주제와 십장생을 사용했다. 긍정적이고 좋은 기운을 가질 수 있도록 작업했다.”
채 작가는 전통 소재를 재해석하기 위해서 작업에 앞서 자료조사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를 통해 전통 민화 속 형상을 위트 있게 변형할 수 있었다. 특히 십장생엔 포함되지 않는 토끼를 파빌리온에 넣어서 별주부전 스토리를 담아냈다. 또한 공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호랑이, 학 등을 보다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색동 컬러를 모던하게 변주하는 등 한국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작품에 웨이파인딩(Wayfinding) 기능도 녹여냈다. 십장생들이 마치 각 게이트를 안내하는 듯한 배치를 통해, 단순히 숫자로만 구분되던 게이트를 보다 직관적이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여행객들은 ‘276번 게이트’ 대신 ‘호랑이동’ 혹은 ‘학동’과 같이 각 십장생의 이름으로 게이트를 인식하고 소통할 수 있다.
동편에서는 전통공연도 선사한다. 국가유산진흥원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문화 콘텐츠인 '신(新) 왕가의 산책'을 2025년 1월부터 일 2회, 주 3회에 걸쳐 선보인다. '신왕가의 산책'은 조선 후기 무과 전시 시행을 위해 훈련원에 거둥한 왕과 무관의 행렬과 퍼포먼스 등으로 구성된다.
서편선 '코리아 재즈'…색의 향연
서편은 글로벌 관점에서 재해석한 한국이다. 글로벌 어반 아트씬을 대표하는 예술가 존원이 본 한국의 모습이 파빌리온을 채운다. 존원 작가는 2015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아티스트다. 그는 이번에 인천공항만을 위한 초대형 작품 'Korea Jazz(코리아 재즈)'를 제작했다.
'코리아 재즈'는 존원 작가가 한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재즈처럼 즉흥적이고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한국의 모습이다. 특히 서울, 인천, 전주, 경주, 제주 등을 여행하면서 느낀 영감을 다채로운 색깔로 표현했다.
존원은 한국의 사찰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가 한국의 색깔로 단청색을 꼽은 이유다. “한국 도자기와 사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한국의 색상이다. 한국이 다른 아시아국들과 구분되는 점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태도다. 이는 동시에 전통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트 파빌리온의 뒤쪽, 아늑한 터널의 직행셔틀 구간에서는 해녀가 문어를 잡는 등 각 여행지에서 인상 깊었던 풍경을 구상으로 표현했다. 여객들은 직행셔틀을 타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한국 여행의 스냅샷을 속도감 있게 즐길 수 있다.
존원은 색채의 세상 속을 거닐면서 인생의 여정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채우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등 요즘은 살아가기 쉬운 시기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밝은 빛으로 가득할 수 있다는, 미래를 위한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승객들이 미소 짓고 긍정적 기운을 얻도록 주안점을 뒀다. 이는 승객들이 한국을 다시 찾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이 넘버원의 목적지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