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밭을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마시니 임금의 힘이 무슨 소용인가."
위정자의 존재는 의식조차 않은 채 배불리 먹고 사는 백성들의 모습을 확인한 요 임금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배 두드리고 땅을 치며 태평성대를 즐긴다는 고복격양(鼓腹擊壤) 고사의 유래다. 국민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하는 게 최고의 정치라는 의미다.
치열하게 전개된 미국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초박빙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최종 결과는 트럼프의 낙승이었다.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를 부르짖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등 민주당 진영에 미국 국민들이 등을 돌린 건 경제 문제 때문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권자의 40%가 경제를 최대 어젠다로 꼽았고 그 중 60%가 트럼프에 투표했다며 '경제가 전부'인 선거였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집권기 미국 경제는 그 정도로 엉망인가.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5%로 우리나라보다 1%포인트 이상 높았다. 최근 3분기 기준 성장률은 2.8%에 달한다.
재작년 9%대를 웃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기준 2.4%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미국 다우존스 지수는 30% 가까이 폭등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화려한 지표에 가려진 건 서민들의 체감 경기였다. 3년 가까이 이어진 고금리·고물가의 상흔은 깊었다. 팬데믹 시기 시중에 뿌려진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바이든 정부가 시작된 뒤 식료품 가격은 20%, 생필품 가격은 30% 이상 뛰었다. 미국판 '못 살겠다 갈아 보자'가 펼쳐지게 된 맥락이다.
우리나라 사정도 나을 게 없다. 올 들어 요식업 폐업 건수는 8만건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1~9월 누적 법인 파산 신청도 1444건으로 지난해 연간 규모(1657건)를 뛰어넘어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국가 경제의 양 날개 중 내수는 부진의 늪에 빠진 지 오래고 그나마 호조세를 유지하던 수출도 트럼프 리스크(고율 관세 부과 등)가 현실화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언급한 내수·수출 동반 악화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오는 28일 경제전망 수정치 발표를 앞둔 한국은행도 내년 성장률 첫 자릿수를 놓고 고심을 거듭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잠재성장률(2.0%) 달성까지 위협 받는 상황. 윤석열 정부가 수수방관 중이거나 뭔가 하긴 하는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과 달리 당장 대선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 정책,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생산성 혁신과 구조 개혁 등. 국가 경제를 수렁에서 건져 낼 방안을 모르는 게 아니다. 요 임금 경지의 무위(無爲)의 도는 차치하고 경제 활력을 되살릴 '보이는 손'이라도 하루빨리 윤곽을 드러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