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번역은 반역' …AI로는 못 넘을 노벨문학상의 벽

2024-1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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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베트남 호찌민에 머물 때, 한강 작가의 2024년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다. 이미 베트남에는 <채식주의자>, <흰> 등의 책이 베트남어로 번역, 출판되어 팔리고 있는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한강의 작품이 완판되고 인쇄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교수로 있는 호찌민 국립대 한국학부가 주최한 ‘한강과 한국문학의 기적’이라는 세미나에 6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한국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이 발표되는 시점에 필자가 마침 베트남에 있어 베트남 교수나 지인들이 필자에게 “축하한다”는 인사에 한국인으로서 매우 우쭐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제 한국처럼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과거 다른 나라 작가들의 문학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발표가 나면, 국내에서는 그 작가의 신드롬이 생기고 그 작가의 작품들이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그 작가를 이해하려는 세미나가 열리곤 하였다. 이제 한국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니 이곳 베트남에서 한강 작가의 책이 품절되고,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는 세미나가 열리니 실로 흐뭇하다. 재방송을 보는 느낌이다.
 
역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나라들을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스, 미국, 독일이다. 당연히 이들의 언어는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이다. 프랑스 14명, 미국 12명, 독일 8명이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의 타고르(Tagore),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 康成)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중국의 모옌(莫言)이 수상했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이다. 그동안 노벨문학상은 총 121명이 수상했으니, 영어, 불어, 독일어권의 수상자가 전체의 4분의 1이 되는 셈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첫째 이유는 당연히 작품의 우수성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가 한강의 작품이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인 산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유로 번역의 역할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어로 된 작품을 세계의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려면, 외국어 특히 영어로 번역이 되어야 한다. 이들이 한국어로 된 작품을 읽기를 바란다면 요원한 일일 게다. 그래서 한국의 문학작품이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이러한 노벨문학상 수상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여기에 번역의 역할과 기능이 자리한다.
 
필자 주위의 사람들은 필자의 전공이 통번역학이라, “이제는 인공지능, AI의 시대이니 외국어는 예전처럼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번역학은 수명을 다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구글을 비롯한 기계번역의 품질이 완벽한 인간의 번역능력과 같아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한다. 구글 번역이나 챗GPT의 번역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일상적인, 반복적인 번역은 이러한 기계번역이 잘하고 유능한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손으로 한번 번역한 문장도 상황에 맞는 문체로 번역을 하라고 하면 멋있게 문장을 가다듬는다.
 
번역에도 전략이 있다. 우리는 보통 직역과 의역이라고 양분한다. 직역과 의역의 연속선상에는, 마치 무지개에 빨주노초파남보로 연속되는 색깔이 존재하듯이, 다양한 번역 전략이 있다. 번역전략의 방법으로 Vinay & Darbelnet의 7가지 번역전략을 든다. 여기에는 차용(borrowing), 모사(calque), 축어역(literal translation), 전위(transposition), 변조(modulation), 등가(equivalence), 번안(adaptation)이 있다.
 
차용은 한 언어권에 없거나 새로운 개념을 표시하기 위하여 외국어를 그대로 수입하여 표기하는 방식의 번역전략이다. 핸드백(handbag), 타이어(tire), 서스펜스(suspense), 소호(SOHO)가 그 예이다. 다음으로 모사인데, 외국어의 단어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는 경우이다. 가령, ‘Hot potato’를 ‘뜨거운 감자’로, ‘Storm in a teacup’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축어역이란 두 언어 사이에 일대일 방식의 번역으로 그대로 직역하는 방법이다. 전위는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되는 경우, 두 언어 간의 품사를 전환하는 번역 전략이다. 변조는 문법적으로는 정확한 번역이기는 하지만, 보다 자연스럽게 번역하기 위한 전략이다. 가령, 영어에서는 긍정문인데 한국어에서는 부정문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런 경우이다. 예를 들면, ‘The coffee was not very hot.’에서 ‘매우 뜨겁지 않았다.’가 아니라, ‘식어 있었다.’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등가는 속담과 같은 경우의 번역이다. 영어 속담을 ‘Every dog has his day’, 즉 ‘모든 개는 자신이 잘나가는 날이 있다.’로 번역하지 않고, 이에 대응하는 한국 속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로 번역하는 식이다. 끝으로, 번안은 원어에서 기술되는 상황이 번역하고자 하는 언어의 새로운 상황에 맞게 각색하여 적용하는 전략으로 우리가 흔히 의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가장 직역인 차용에서 가장 의역인 번안에 이르기까지 기계번역이 가장 번역을 잘하고 효과적인 번역은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다. 가령 매뉴얼이나 특허번역과 같은 분야는 기계번역이 가장 잘하는 번역 분야이다. 나아가 의역의 차원을 넘어서는 ‘창작번역(transcreation)’과 같은 영역은 아직 인간의 직관과 번역 능력이 더 효과적이고 기계번역이 따라잡을 수 없는 번역의 영역이다. 직역의 단순한 언어적 차원에서 번역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의역의 영역으로 넘어가 문화와 정서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할 것인가 판단은 기계에게 위임할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적확한 번역을 위해서 원어와 번역되는 언어의 이해뿐만 아니라, 해당 언어의 나라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이해와 지식이 필요하며, 심지어 당시에 유행하는 말까지 알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번역은 반역(traduttore, traditore)’이라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번역과정에는 번역본에서의 수용과 이해를 위해 원본이 훼손(!)되어 반역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 반역 과정이 바로 번역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은 기계보다 인간의 언어적 직관이 우월하다. 언어적 전이를 넘어서는 문화적, 정서적 예민함은 인간의 영역이 된다.
 
세계 각국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온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보다 더 적극적인 범정부 차원의 한국어 번역지원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기가 나오면 화가의 설 자리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 몇 백년이 지났지만, 그림은 여전히 예술로 존재한다. 기계번역, AI번역이 판을 치더라도, 예술로서의 번역은 기계가 대신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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