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당시 이른바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16년간 옥살이를 했던 재일도포 고(故) 진두현씨가 사형 확정 판결 4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0부(남성민·송오섭·김선아 부장판사)는 3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진씨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방위산업체 직원 고 박석주씨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해 50년 전 불법체포와 구금 등 가혹행위가 이뤄진 게 재심 결정의 사유였다"며 "심리 결과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취지로 한 진술은 보안사에 의해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한 이후 임의성(동의에 의한 자발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의 형벌권 대상은 법률의 실체적 진실을 엄격한 증명으로 밝힐 때 정당화될 수 있다"며 "엄격한 증명을 위해서는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여야 한다"며 "자백의 보강 증거로 제출된 압수물 역시 불법 수집된 것으로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반백 년이 흘렀지만 그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판결이 유족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판 후 진씨 배우자 박삼순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검찰이 항고 없이) 이걸로 끝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이 사건은 민간인 15명, 군인 신분 2명에 대해 기소가 이뤄졌다"며 "검찰이 연락이 안 되고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10명을 찾아 대신 재심 청구하고 유족들에게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공익 대표자인 검찰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통혁당 사건은 1968년 8월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북한 지령을 받은 인사들이 통혁당을 결성해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으로 모두 17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진씨는 1976년 사형을, 박석주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진씨는 16년간 옥살이를 하다 감형돼 1990년 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