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 시공사 상무는 현장 상황을 설명하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직격탄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잘나가던 건설업체들이 줄도산하는 것을 눈 뜨고 지켜 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암담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건설 경기 한파다.
실제 우리나라 건설투자는 2분기 연속 내림세로 올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주범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3분기 국내총생산(GDP)(속보치)에 따르면 건설투자는 건물건설과 토목건설이 모두 줄어 전기 대비 2.8% 역성장했다. 2분기(-1.7%)에 이은 2분기 연속 내림세다. 1분기엔 3.3%나 성장해 '깜짝 성장'을 이끈 주역이었지만 정부 재정효과가 사라지자 곧바로 부진이 심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소비, 설비투자와 함께 내수의 한 축인 건설투자는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갉아먹는 주요인이 됐다. 건설투자의 성장기여도는 지난 2분기에는 -0.3%포인트, 3분기엔 -0.4%포인트로 집계됐다. 2분기 마이너스(-)였던 설비투자(0.6%포인트)와 민간소비(0.2%포인트)가 큰 폭으로 반등하면서 내수가 회복세에 접어드나 했지만 건설투자가 찬물을 끼얹었다.
전방산업인 건설업황 부진으로 철강, 시멘트, 레미콘 등 건설 후방산업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총 출하량은 4400만t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연간 출하량은 지난해(5024만t) 대비 12.4%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레미콘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대비 35% 정도 물량 감소된 걸로 파악되며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물량, 인건비 등 고정비는 나가야 하는데 웬만한 기업은 다 적자전환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갈수록 건설경기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이달 건설업과 비금속광물 업황실적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모두 47로 통계 개편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건설업에 대한 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최악이라는 의미다.
한은도 건설경기 악화가 장기화하자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0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선 가뜩이나 업황이 좋지 않은데 정부 총지출 증가율 둔화로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줄을 이었다.
의사록에서 한은 담당 부서는 "통합재정지출 증가율이 둔화된다면 정부소비 이외에도 건설투자에 영향을 미치면서 금년 GDP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올해보다 3.4% 감소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건설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선행지표인 인허가, 착공 면적 흐름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건설경기가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