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할 것 같던 삼성전자는 최근 들어 그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선두를 달리고 있던 핵심 사업들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기 시작하면서다.
메모리가 대표적이다. D램 등 메모리 시장에서 30년 이상 세계 시장 1위를 달리며 인텔을 밀어냈지만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흐름을 빠르게 읽어내지 못하며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준 것이다.
31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삼성전자는 반도체(DS)부문 영업이익이 4조~5조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7조원 이상을 거둔 SK하이닉스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같은 흐름을 비춰보면 사상 처음으로 DS부문 연간 영업이익마저 SK하이닉스에 역전당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스마트폰 사업은 표면상 글로벌 출하량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벌어졌다. 밑에서는 추격하는 중국 세트업체들에 점유율을 내주고 있다. 종합 전자회사 위상에서 '초격차'를 잃어가면서 확고한 '1등 브랜드'가 아닌 이것저것 다 파는 '잡화점'이 더 어울리는 수식어가 돼 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종합' 사업이 빅테크 기업들과 협업하는 데 제약이 되면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러 사업에 발을 걸쳐 놓으면서 고객사이자 경쟁사 관계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TSMC와 '3각 편대'를 구축하며 AI 시장 지배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자사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 등을 일괄 제공하는 '턴키 솔루션'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등 나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여기에 AI 가속기 개발까지 시도하며 고객사를 경쟁사로 돌려놓고 있다.
계열사들도 삼성전자의 그늘이 부품시장 '큰손'인 애플과 거래하는 데 장벽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이노텍과 비슷한 카메라모듈 기술력을 가진 삼성전기지만 애플이 삼성전자 경쟁사인 만큼 보안 문제로 거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을 둘러싼 위기설이 확산되면서 연말 인사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벌써부터 DS부문을 중심으로 고위 임원들이 대거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 상태다. 잃어버린 초격차를 되찾고 경영 쇄신을 이룰 파격적인 인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