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43)는 캐릭터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내어 관객이 작품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하고, 온전히 이해하게 만드는 힘은 배우 정우의 장기이자 강력한 무기다.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감독 김민수)에서도 정우의 장기는 빛을 발했다. 그는 범죄 조직의 '더러운 돈'에 손을 대며 예상치 못한 사건과 얽히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내어 관객을 설득했다.
정우가 '명득'에게서 발견한 인간적인 면모는 '부성애'였다. 범죄 조직의 불법 자금에 손대는 '명득'에게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딸과의 감정은 오롯이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명득'의 행동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려면 명분이 필요했는데, 딸에 대한 감정 자체가 '명분'이 되었죠. 하지만 그 감정을 겹겹이 쌓아 전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짧은 몇 장면으로 (부성애를) 표현해야 했어요. 딸에 대한 마음, 부성애는 배우의 몫이니까요."
정우와 김민수 감독은 20년 지기 친구다.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동문인 두 사람은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로 감독과 배우로서 처음 함께 작업했다.
"저는 인간 김민수를 정말 존경해요. 응원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열심히 살고 건강하며 듬직하죠. 항상 잘되길 바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어요."
그는 김 감독과의 현장을 언급하며 "에너지가 넘쳤다"고 표현했다.
"김 감독은 따뜻하면서도 전체 현장을 장악하는 통솔력이 있어요. 뚝심이랄까, 꼭 '짱돌' 같아요. 하하. 어느 신을 찍어도 주눅들지 않고 계획한 대로 해냅니다."
김 감독의 사려 깊고 강단 있는 태도는 정우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정우는 김 감독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작품을 마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 감독과 시너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배우들은 현장에서 오롯이 해내야 하는 몫이 있잖아요. 카메라 앞에서 그걸 해내야 하고, 도움을 받지만, 그 순간에는 외롭고 고통스럽죠. 대부분 감독님도 이 상황을 이해해 주지만, 결국엔 배우가 다 감당해야 할 일이에요. 그럴 때마다 민수는 제게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었어요. 감정을 함께 고민하고, 아파해주면서 동료애가 생긴 것 같아요. 대학 동문이라는 것보다, 함께 작품을 하면서 더 깊은 동료애가 생긴 것 같아요."
정우는 배우가 느끼는 외로움, 괴로움에 관해 이야기하며 최근 몇 년간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도 '감정 연기'에 특화되어 있는 배우라고 여겨왔지만 계속해서 극적인 감정들을 소모하며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심장을 낚싯바늘에 꿰어 놓은 것 같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는 비슷한 시기 영화 '이웃사촌' '뜨거운 피'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를 연달아 촬영하며 심적 압박을 느꼈고 '감정의 늪'에 빠져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고통을 '성장통'이라고 정의하며 "마치 늪에 빠져있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의 늪'에 빠졌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스스로 늪에 빠져버린 거죠.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을 때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를 만나게 됐어요."
그는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이자 아내인 김유미와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의 손석우 대표의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의 마음을 드러냈다.
"매 순간이 한계였어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죠. 잘 이겨냈고요. 저 혼자였으면 이겨낼 수 없었어요. 그 중심에 (김)유미씨가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손석우 대표님이 있어요. 그전까지는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 같았다면, 지금은 잘 조련된 경주마 같은 느낌이랄까요.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픈 만큼 성장한 거죠."
인터뷰를 마치며 정우는 "매 순간이 즐겁고 감사하다"며 웃었다.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라는 그의 얼굴이 한결 후련해 보였다.
"이제는 불씨를 조절하며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해피바이러스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