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방문(9월 19~22일)으로 원전 세일즈 외교가 9부 능선을 넘어서면서 원자력 발전을 차세대 핵심 먹거리 산업으로 키우자는 논의가 강하게 일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영업 실적에 따라 나라 경제가 웃고 우는 극심한 편향 경제체제를 벗어나지 않는 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글로벌 리스크에 상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삼성과 현대 외에도 튼실한 대기업들이 포진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과연 이들 1진 그룹에 이어 ‘세계 최고의 첨단기술을 갖고 있고, 미래 시장성이 밝은 블루오션이 기대되는 분야’라는 조건을 충족하며 차세대를 담보할 기업과 산업이 우리에게 있는가.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서 비롯된 경제안보 시대에 한국은 지금 1진 그룹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그 뒤를 받쳐줄 2진 그룹마저 보이지 않는 전도가 매우 불투명한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그 탈출구로서 원전산업이 주목되고 있다.
정부와 경제계는 많은 국가가 첨단 산업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탄소 중립, 에너지 안보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 해결책이 원전 확대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정부가 원전을 반도체, 무기 등과 함께 수출 강화 분야로 꼽고 있는 배경이다.
이러한 정부와 경제계의 인식을 확신시키는 분석 기사들이 해외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우선 지난 21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원자력 발전을 향한 빅 테크의 돌진, AI 도약으로 전력 수요 급증’이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꼽을 수 있다. 요약 정리하면 이렇다.
1979년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2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해 미국 내 원전 신규 건설이 수십 년 동안 정체된 원인이 됐다. 원전의 심각한 사고는 스리마일 아일랜드, 옛 소련(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1986년), 후쿠시마 제1원전(2011년)에서 일어났다.
사고를 면한 1호기는 운전을 계속했지만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 화력 발전의 부상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 운전기간 인허가는 34년까지였지만 이를 기다리지 않고 2019년에 폐로하기로 했다. 이번에 재가동하는 것은 1호기이다.
빅테크들의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은 주로 전력 소모가 많은 인공지능(AI)의 도약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AI(챗GPT)에 정보처리를 한 번 요청(쿼리)할 때 소요되는 전력은 일반적인 구글 검색의 최대 10배에 달한다. 골드만삭스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16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에서는 교통수단의 전기화와 '리쇼어링' 노력으로 촉발된 제조업 르네상스에 더해 데이터 수요가 증가하면서 향후 10년간 전력 수요가 이전보다 최소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는 유럽의 경우 2023년부터 2033년까지 전력 수요가 4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주 “석탄 시대와 석유 시대를 지나 전 세계가 전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선언했다.
빅 테크들은 미국과 같은 국가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려면 자체적으로 많은 발전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탄소 배출 제로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친환경 전력을 사용해야 하며, 이미 풍력과 태양광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이제는 원자력 에너지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은 원칙적으로 기후 솔루션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원전은 바람과 햇빛을 포함한 기후에 좌우되지 않고,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무탄소 에너지다. 문제는 1000메가와트(1메가는 100만) 규모의 원전을 건설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런 약점을 해소하기 위해 대형 원전에 비해 더 저렴한 가격으로 빨리 건설할 수 있는 300메가와트 규모의 SMR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론적으로 크기가 작기 때문에 전력이 필요한 곳과 가까운 곳, 이미 전력망에 연결된 이전 석탄발전소와 같은 부지에 설치할 수 있다. SMR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빅 테크의 재정적 영향력과 혁신적인 노력을 감안하면 SMR 개발이 빨라지리라는 전망도 있다. 일론 머스크가 우주사업에서 이룬 성과에서 보듯이 정부 주도의 재정 지원 개발에서 민간 자금 조달로 주도권 전환이 가속화할 수 있다.
어찌 됐든 2030년 이전에도 AI 기반 데이터 수요가 급증할 것이므로 빅 테크들은 풍력과 태양광에도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 AP통신은 “전력과 청정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원자력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고 지난 17일 뉴욕발로 전했다.
“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 배출량 감축에 주력하면서 원자력 발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동시에 데이터센터와 AI의 강력한 발전으로 인해 기술 부문의 에너지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많은 기업과 정부들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잠재적 위험성 때문에 선호되지 않았던 전원을 더욱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매킨지에 따르면 미국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2030년까지 전력 수요가 3배 이상 증가해 80기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컨스텔레이션 에너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계약과 아울러 오라클은 SMR로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아마존은 올해 초 펜실베이니아 원전에서 전력이 공급되는 데이터센터를 사들였으며, 소형 원자로에도 투자하고 있다. 매킨지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에서 “전력 부문이 AI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력에 대한 접근성은 새로운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 셈이다.
이러한 전력 수요 증가는 탄소 배출량을 '넷(순)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와 맞물려 원전에 대한 대가가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전은 이미 미국 전체 전력 생산량의 약 20%를 공급하고 있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북미에서 원자력 발전 용량이 거의 세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여전히 원전 개발을 유예하고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위스콘신, 켄터키, 몬태나, 웨스트버지니아는 원전 건설의 문을 다시 연 주들이다. 뉴욕을 포함한 다른 주에서는 규모와 위치에 따라 부분적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이러한 원전 수요 증가로 원전 기술 회사와 우라늄 채굴업체들의 주가가 강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뉴스케일 파워는 주가가 2023년에 40% 급등한 데 이어 올해 5배 이상 급등했다. 이 회사는 SMR을 만든다. 우라늄 가격은 15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다. 가격 급등은 우라늄 채굴업체와 동종 업체들이 연료 수요 증가에 직면하면서 카메코와 넥스젠을 비롯한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외신 보도는 데이터센터에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IT 대기업과 전력 사업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GX·DX의 전제로서 원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AI로 인한 컴퓨팅 수요 증가로 전력 확보가 다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건설과 기술 개발의 여지가 큰 원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음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빅 테크 기업들의 관심이 전력에 집중되면서 기존 원전의 재가동, 소형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핵융합 발전 등 신기술 개발에도 투자와 두뇌가 집중될 것으로 기대된다. 냉전 종식 후 정체되어 있던 우주개발이 스페이스 X의 진입으로 급변했듯이 원전에도 빅 테크 기업들의 자금과 두뇌가 유입되고 향후 AI가 활용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원전 강국’인 한국은 세계의 큰 흐름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원전 르네상스’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민관 협력을 바탕으로 원전산업 발전을 가속화해 세계 원전시장에서 앞서나가면서 산업혁신과 신산업 창출을 통한 경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대형 원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SMR 개발을 가속화해 미래에 대비해야 함은 물론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