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일본에서는 여당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총재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제28대 총재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가 선출되었고, 10월 1일 이시바는 일본 국회에서 제102대 내각총리대신(총리)으로 지명되어 새로운 내각을 발족시켰다.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의 비주류라고 여겨지며 동료 국회의원 사이에서도 인기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전직 은행원 출신으로 솔직하고 정직한 성격에 원리 원칙을 고집하며, 바른말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동료 의원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독서와 공부를 우선한다고 한다. “과거 총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지지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화를 걸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이고, 정작 본인은 전화를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측근이 동료 의원들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도 머리 숙여 지지를 요청하는 일은 없었다.” “남에게 얻어먹는 일은 있어도 후배들에게 사주는 일은 없었다.” 등의 일화가 있을 정도로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인물이었고, 눈치가 없다고 나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책입안 능력이 뛰어나고 겸손하며 철두철미한 사람으로 인정도 받는다. 그런 평가를 받는 그가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자민당 총재로 뽑혔으니 새로운 자민당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역대 최다인 9명이 입후보하며 어느 때보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번 선거가 파벌의 힘이 작동되지 않은 선거였기 때문에 후보자가 난립하면서 누가 이길지 예상이 어려운 이례적인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각 파벌 간부들에 의해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을 거쳐 선거가 치러졌지만 이번 선거는 '비자금 문제'로 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총리가 결단을 내려 파벌을 모두 해산시키는 방침을 낸 결과였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安倍)파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이 이뤄졌다고 짐작되는 이번 문제를 계기로 자민당 특유의 파벌 정치가 일시적이나마 중단된 것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일부 유력 정치인들이 뒤에서 담합하고, 요직을 나누고, 지도자를 뽑는 등 여론과 동떨어진 자민당만의 정치역학으로 일본의 총리가 결정되어 온 관행이 일단 중단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주축이 되는 후보가 없는 선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선거는 어디까지나 자민당원들에 의한 것이고 대다수 국민에게는 선거권이 없지만, 현재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자민당의 총재가 일본의 총리가 되는 것이 실질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 정당의 선거지만 세간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당초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가 유력 후보로 여겨졌으나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매일 먹고 싶다는 것은, 매일 먹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라든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지금 이대로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등의 “내용이 없는” 발언이나 “의미 불명”의 자기도취형 말투가 언론에서 거론되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물론 그것만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한 나라의 총리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그는 밀려났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앞서 9월 23일,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당대표 선거도 치러졌는데, 과거에 민주당(현재 입헌민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했을 때 총리를 지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가 당선되었다. 노다는 야당 정치인 중에서는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정치인으로 자민당과도 지지층이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보다 넓은 유권자층을 끌어안아서 다시 정권 교체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여당과도 충분히 논전을 벌일 수 있는 정치인이라고 인식되었고, 이에 자민당 내부에서는 고이즈미가 총재가 될 경우 노다를 상대로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생겼다고도 한다.
결국 총재 선거 당일까지 고이즈미와 이시바, 그리고 강경우파 지지층을 등에 업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까지 3명이 유력 후보로 지목된 가운데 고이즈미가 밀려나며 이시바와 다카이치 양자대결의 구도가 되었고, 이들 2명이 결선 투표까지 남았다. 그런데 다카이치는 총리가 되어도 기존과 같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 그를 선택하는 것은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를 각오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종적으로 1차 투표에서는 국회의원 표에서 다카이치가 1위였으나 결선 투표에서는 국회의원 표에서 역전당하며 이시바가 새 총재로 선출되었다. 이는 중국이나 한국과의 대립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다카이치의 강경한 자세를 우려한 판단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혹은 그녀가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후견을 받았다는 점이나 여성이라는 점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자민당은 동료 국회의원들로부터 인기가 없다고 여겨져왔던 이시바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이러한 결과를 보고 자민당의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선된 이시바지만 총재 취임 직후부터 자민당이라는 조직에 농락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초심 그대로 원리 원칙을 따른다는 그의 지론이 바로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중의원 선거 실시를 둘러싼 결단이다. 일본 국회는 양원제(중의원과 참의원)로, 그중 중의원에는 ‘해산’이라는 제도가 있다. 임기가 오면 당연히 선거에 의해 다시 국회의원들이 선출되지만, 그와는 별도로 중의원은 임기 중이라도 총리의 판단에 따라 해산이 결정될 수도 있다. 원래는 국회에 의해 내각 불신임안이 가결되거나 신임안이 부결될 때 내각은 총사퇴 또는 중의원 해산을 선택해야 한다. 즉, 중의원 해산이란 내각 또는 내각을 불신임한 국회, 둘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국민에게 묻겠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기시다 전 총리의 임기 만료에 따라 새로운 자민당 총재를 선출했을 뿐이고 이시바 새 총리에 대한 국민 차원의 신임 절차가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시바 정권이 어떤 정치를 하려는지도 모르고 선거를 한들 국민은 평가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시바는 스스로 총재 선거 기간부터 일관되게 “국민에게 판단 재료를 제공하는 것은 새 정부의 책임”이라며 조기 중의원 해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새 총리가 되면 우선 국회에서 야당과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정권에 대해 충분한 평가 재료를 제공한 다음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며 총리 취임 후 일정 기간을 두고 중의원을 해산해 중의원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그런데 총재 취임 후 아직 국회에서 내각총리대신 지명을 받기 하루 전인 상황에서 원래는 총리에게만 인정되는 국회의 해산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공표한 것이다. 물론 이시바가 총리로 결정될 것은 이미 분명한 상황이었지만, 절차를 밟기도 전에 그런 발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국회를 경시한 태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원칙주의자인 이시바가 그런 결단을 내린 데는 그가 무시할 수 없는 자민당 내부의 목소리가 있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시바는 비자금 문제에 대한 대처에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치계에 대한 여론의 불신이 강해진 가운데 기시다 총리가 연임을 포기함으로써 책임을 진다는 대의가 있었다. 그렇다면 자민당은 비자금 문제가 지적된 의원 전원(85명)이나, 적어도 자민당 스스로 처분을 내린 의원(39명)을 다음 선거에서 공천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12명만 자민당 공천에서 제외됐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 비공천 12명은 비자금 문제에서 책임이 무겁다고 볼 수 있는 아베파 간부 의원들과 그 외의 비자금 문제로 당선이 위험해진 의원들이라고 한다. 즉, 비자금 문제가 있는 의원이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으면 자민당으로 공천해 선거에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애초에 비자금 문제를 책임지기 위해 당의 수장이 교체되었는데 이것이 단순히 자민당의 얼굴만 바꿔치기한 것일 뿐이라면 당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선거가 끝나면 자민당은 국민으로부터 용서를 얻었다며 비자금 문제는 없던 일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닌 흐지부지 무마시키려는 태도의 자민당이 선거 후에도 정권을 잡는다면, 그것은 바로 유권자가 그들의 잘못을 용서한 것이 되고 만다. 물론 해산 전 단계에서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자민당이지만 이대로라면 과반수가 붕괴될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다만, 정당 지지율로 말하면 자민당은 여전히 가장 많은 지지자를 가지고 있고, 야당들의 표가 분산될 것을 생각하면 자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공명당과의 연립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여서 정권 교체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의원 선거는 이번 달 27일에 실시된다. 새 총리가 취임한 지 8일 만에 중의원이 해산된 것은 전후 최단 기간이라고 한다. 즉, 이시바 정권은 국민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자신의 정권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선거기간도 불과 20일이 채 안 돼 짧다. 일본에서는 올 연초부터 이시카와 현(石川県) 노토(能登)반도에서 지진에 이어 폭우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고, 투표소 설치도 여의치 않을 정도로 재해 복구가 한창일 때 왜 선거를 치러야 하냐는 비판도 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은 자민당의 비자금 문제를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있지 다른 정책적 쟁점이 뚜렷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위화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총리 교체도 국회 중의원의 해산도 그리고 그 선거 실시 일정까지도 모든 것이 자민당의 형편에 따라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어도 자기 주관을 갖고 바른말을 해온 이시바가 총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총리 취임 후 그의 행보를 보면 새로운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으나, 결국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자민당 정치가 전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한편, 한국에서는 새로운 총리 이시바를 ‘비둘기파’로 소개하는 모양이다. ‘매파’의 다카이치가 아닌 이시바가 총리에 오르며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라는 평가가 일본 비자민당 지지층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근래에는 비둘기파 같은 주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 그는 원래 ‘밀리터리 오타쿠’, ‘안보 덕후’의 매파로 알려진 정치인이다. 과거 자민당 총재 선거에 4번이나 도전한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민당의 고참 의원 중 한 명이고, 적지 않은 자민당의 유력 의원이 그렇듯 그 역시 가문의 후광을 얻은 세습 의원이다. 그리고 의원 생활 38년 동안의 대부분을 자민당 의원으로서 보낸 것을 생각하면, 비주류였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그는 ‘자민당 정치인’이고, 비둘기파라고 불리는 것도 어디까지나 현재 자민당 내에서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타당한 평가일 것이다.
또한 그가 ‘친한파’라고 기대하는 한국 내에서의 목소리에도 유보가 필요하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관련해서 “서로가 납득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친한파라기보다는 나름의 상식적 시각으로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바른말을 피력해 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앞으로는 일개 의원이 아닌 일국의 총리로서 같은 입장을 견지하며 발언할 정도의 신념을 가지고 있을지, 또 그런 환경이 마련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자민당 총재 취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 봐도 그가 초심대로 결정을 내리고 나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