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외모와 스피치 통치 스타일 까지 김일성 본뜬 격세유전 리더십

2024-10-2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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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논설고문
[박종렬 논설고문]
 

 

할아버지 격세유전, 白頭血統 정통성 승계로 확보한 리더십 부각

본명이 김성주(金成柱)인 김정은의 조부 김일성(1912~1994)은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古平面 南里: 현 평양 만경대구역 만경대)에서 아버지 김형직(金亨稷:1894~1926)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강반석(康盤石:1892~1932)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모태신앙 기독교인으로 8살 때 부모 따라 만주 지린성(吉林省) 푸쑹(撫松)으로 이주, 유년시절을 보냈다.

김형직은 무면허 한의사로 공산주의자라면 치료도 거부하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공산주의자의 미움을 사 김일성이 14살이던 1926년 32살에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김일성은 조부모 슬하에서 보통학교인 창덕학교를 거쳐 지린성 송화강변의 위원(毓文, 육문)중학교에 1926년 입학했으나 1929년 중퇴했다. 이 학교 중국인 선생 상웨(尙鉞)에게서 공산주의를 배우고, 1929년 5월 조선공산청년회(朝鮮共産靑年會)에 가입,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적발되어 투옥, 6개월여 수감 생활을 하던 중 퇴학당했다.

1930년 석방된 뒤 김일성(金日成)이란 가명을 쓰기 시작한 그는 1931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3년 이후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의 소속으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부대를 조직해 ‘보천보 전투’ 등 빨치산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군의 추격을 받은 김일성은 1941년 소련령 블라디보스토크로 피했다가 하바로프스크로 옮겨 그곳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88여단에서 특무공작 요원 훈련을 받고 소련군 소좌 계급장을 달았다.

1945년 33살이던 김일성은 광복을 맞아 9월 소련 상선을 타고 원산항에 입항, 10월 14일 평양의 군중대회에 모습을 드러낸다.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북한에 돌아온 그는 1946년 2월에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수립을 선포, 같은 해 7월에 스탈린에 의해 북한의 지도자로 낙점받아 해방정국에서 기라성(綺羅星) 같은 백전노장 독립투사들을 제치고 대권을 장악했다.

아버지를 잃은 한미(寒微)한 가문 출신으로 만주에서 10대에 독립운동을 시작, 일제 토벌군을 피해 소련으로 건너갔던 그는 로마넨코, 스티코프 장군 등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 지도자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천거로 왕기(王器)임을 알아본 스탈린의 낙점을 받아 최고지도자로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김일성의 집권은 ‘문득 무심하게 고개 돌려 쳐다보니'처럼 홀연히 찾아든 선물 같은 북한판 맥연회수(驀然回首)였다.

김일성은 북조선 공산당과 북한 정권을 장악, 1950년 남침을 감행해 6·25 한국전쟁을 일으켰으며, 전후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확고한 1인지배체제를 구축했다. 1960년대 말부터는 개인숭배 운동이 고조돼 거의 신격화(神格化) 수준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북한 근·현대사는 김일성 가계 중심으로 재편됐다.

북한 정권 수립 뒤 일제하에서 공산당 최고 리더로 군림, 카리스마 넘치는 거물 박헌영 등 숱한 정적들을 제거한 김일성은 유일 체제를 확립했다. 특히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던 그는 세계공산주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대립하던 중-소대결의 틈바구니에서 ‘주체사상’을 제창, 신정체제(神政體制)와 같은 1인 독재체제를 완성한 것이다.

인민들에게 신(神)과 같은 존재로 생전에 이미 ‘무오류(無誤謬)의 전설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김정일은 마르크스 레닌의 공산 사상보다 우선시하는 ‘주체사상’을 ‘국책 이데올로기’로 확립하고 이를 기념, 연호(年號)를 김일성 출생 시기로 잡아 ‘주체(主體)’로 쓰는 현대판 왕조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한 것이다.

우상화를 통한 개인숭배로 구축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후계 세습체제를 확고히 구축, 김일성 사후 장남인 김정일이 대권을 세습, 승계했다. 김일성은 ‘민족의 태양’이 되어 출생일이 국경절이 됐고, 주체사상 유일 지배체제로 사후에도 여전히 확고한 카리스마를 유지하고 있다. 사망 후 3년 정도의 과도기에는 이른바 ‘유훈통치(遺訓統治)’로, 김정일 시대 개막 이후 현재까지 ‘영원한 수령’으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김일성과 그의 부인 김정숙이 백두산을 거점으로 항일투쟁을 벌였다고 해서 김일성 직계 가족을 일컫는 ‘백두혈통’(白頭血統)은 상징적인 북한 체제 선전의 이데올로기다. 김정일은 집권 후 신격화를 위해 실제 출생지인 연해주 하바로프스크가 아닌 ‘백두산 밀영(密營)’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한다. 백두산 한 봉우리에 ‘정일봉(正日峰)’이란 이름을 붙이고, 생가로 밀영을 짓는 등 백두산과 김정일을 동일시하여 혈통적으로 우수함을 상징조작한 것이다. 김정은 역시 후계체제 세습의 정통성 명분과 ‘혁명 위업 계승자’라는 논리를 ‘백두혈통’에서 찾고 있다.

백두산 소재지인 양강도 삼지연군은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지역이자 김정일 출생지로, 북한 주민들이 순례하는 ‘혁명의 성지(聖地)’로 선전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중대한 고비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마다 “김정은 동지께서 백두의 첫눈을 맞으시며 몸소 백마를 타시고 백두산정에 오르시었다”라며 ‘백두혈통’ 상징인 백마 탄 김정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동안 ‘백두혈통’이라는 정통성을 바탕으로 권력을 세습, 김정일이 선친의 유훈(遺訓)을 통치지침으로 삼은 데 이어 그의 사후 권력은 그의 아들인 김정은에게 승계되었다. 김정은은 신화적인 조부 ‘김일성 통치행태’를 모방, ‘조부 이미지 전이(轉移)’를 통해 김일성이 누렸던 ‘위대한 어버이 수령’의 어진 모습을 부각하며 인민 생활 향상을 내세우는 인민 친화적인 대중적 이미지로 포지셔닝했다.

지난 2010년, 김정은은 집권 초 ‘3년 안에 주민들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도록 하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는 1962년 최고인민회의에서 당시 내각 수상이던 김일성이 했던 약속을 48년 만에 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신화처럼 김정은도 3살 때부터 백발백중(百發百中)의 명사수로 7개 언어를 구사한다는 등 선전도 흡사하다.

2012년 15일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태양절)을 맞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은 앞뒤 좌우로 기우뚱기우뚱 몸을 흔들어가며 다소 빠른 속도로 나지막이 연설하는 목소리, 큰 몸집에 뒤로 쓸어올린 머리 스타일, 짙은 색깔의 인민복과 손뼉 치는 모습까지 닮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날 열병식에서는 흰색 망토를 휘날리며 백마부대가 등장, 역시 김일성 주석 생전에 있었던 열병식에서 자주 보이던 모습으로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젊은이답지 않게 성량(聲量)을 조절해가며 일부러 톤을 낮춘 김정은의 스피치 스타일은 평소 연설을 즐기던 김일성 주석의 지난 1948년 인민위원회 연설 때 장면과 흡사했다. 김일성의 출생일을 기념하는 국경절인 태양절 무대는 ‘이미지 메이킹’의 정점이었다. 주석단 무대의 김정은 왼쪽에 도열한 최룡해 총정치국장 등 군부 인사들의 둥근 모자와 흰색 예복은 김일성 주석이 해방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와 연설할 때 복장 그대로였다.

호방하게 웃는 모습, 짧게 친 머리 스타일, 롱코트 옷차림 등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을 닮은 외양으로 주목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외모나 정치적으로 김 주석을 모방, 할아버지 김일성 ‘따라잡기’ 모습을 보여왔다. 목소리, 몸동작은 물론 연설 태도까지 할아버지를 너무나 빼닮아 ‘김일성이 환생(還生)’ 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됐다.

이에 대해 ‘김일성 모방’을 학습해 ‘철저히 만들어진 지도자’ 이미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정은이 할아버지를 닮기 위해 6차례 성형수술을 했다”는 중국 일부 매체의 보도에 대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근거가 없다” (2013.01.23.)고 보도했다. 김정은이 김일성을 닮은 것은 ‘격세유전(隔世遺傳·손자 세대 이후에 나타나는 유전)으로 매우 정상적’이라고도 평했다. 많은 설왕설래에도 불구, 그는 선친 김정일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 세대를 걸러 나타나는 ‘격세유전(atavism)’으로 조부인 김일성 스타일과 흡사하다는 평가다.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은 김일성처럼 대중과의 스킨십 강화, 공개적인 대중 연설, 상대적으로 민생을 중시하는 정치, 대남 초강경 기조, 경제개혁 가능성 시사 등 통치방법도 유사하다. 김정은이 옷차림과 걸음걸이, 웃는 모습 등에서 할아버지를 본받으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국민을 아낀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배를 내밀고 걷는 모습은 ‘타고난 위인’이라는 느낌을 전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조선일보, 2013.1.24.).

‘뿔테 안경에 뒷짐’을 쥐고 걷는 보행과 선대(先代) 패션을 따라 하는 행태는 폐쇄적인 독재 국가의 집권자인 만큼 단순한 패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선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상케 하는 선글라스와 카키색 점퍼 차림의 연설 등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한 김 위원장으로서는 인민들에게 선대(先代)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체제의 정통성을 부각,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패션 정치의 일환인 셈이다.

선친인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74년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이후 92년 인민군 창건기념일 때 딱 한 문장이 전부인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고 한차례 연설한 데 비해 김일성은 해마다 신년사도 직접 읽고, 주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접촉했었다.

이처럼 김정은의 할아버지 따라 하기는 ‘할아버지의 업적’에 기대 3대 세습체제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지금보다 형편이 나았던 김일성 시대를 상기시키기 위해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김정일식 리더십보다는 주민과 병사들을 챙기는 ‘김일성식 수령 리더십’을 차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조부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없고, 생전에 만나지 못한 태생적 한계극복을 위한 눈물겨운 이미지 조작이라는 평가다.

 

공포통치 용인술, “닭 목을 쳐 원숭이 길들인다”는 ‘살계경후(殺鷄儆侯)’ 전술

김정은의 용인술(用人術)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공포통치의 전형(典型)을 보여준다. 집권 초 김정은은 체제 단속과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징역형도 무조건 공개처형’, ‘탈북자 무조건 사살’ ‘군부숙청’ 등 ‘공포심을 자극’하며 통치했다. 당시 주민들은 “어리다고 우습게 보지 마라”는 김정은의 공포통치라고 수군거리며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고위 탈북자 최모씨는 “1998년 공식 집권한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으로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총소리를 울려라’고 인민보안부에 지시해 절도범까지 총살했다”며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김정은도 아비가 했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같다”고 했다(조선일보, 2011.12.15.).

집권 초 27세의 세습 권력자로 권력 기반이 취약했던 김정은은 이복형인 김정남을 지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할아버지의 사위이자 아버지의 매제였던 고숙 장성택을 가차 없이 숙청, 자신의 권좌를 넘보거나 걸림돌이 되면 가차 없이 제거한다는 본보기를 시현했다. 모택동이 자신을 위협하는 유소기 임표 등 2인자 제거를 통해 일벌백계(一罰百戒) 로 본보기를 보인 것과 유사한 통치 수법이다.

김정은은 곡예장의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지 않자 ‘원숭이는 피를 싫어한다’는 속설을 믿는 주인이 “닭의 목을 쳐 공포로써 원숭이를 길들였다”는 ‘살계경후(殺鷄儆侯)’ 고사를 실천한 셈이다. 원숭이(侯)가 보는 앞에서 목이 잘린 닭(鷄)이 순식간에 피가 솟구치고 파닥거리다 죽자 공포에 질린 원숭이는 그제야 주인의 징 소리에 따라 필사적으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재주를 부리게 된다. 목숨을 건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살계경후’가 먹혀들게 하려면 되도록 ‘큰 닭’을 대상으로 피를 뿌리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럴수록 원숭이를 잘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26계(計)에 해당하는 지상매괴(指桑罵槐·뽕나무를 가리키며 회나무를 꾸짖는다) 같은 전술이다. 강력한 적을 제압해 다른 조직원들에게 경고를 보낼 때 흔히 쓰는 계책이다. 김정은은 권력층에 피바람을 예고, 누구도 권력을 넘보거나 까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고로 유일 영도체계를 확립한 것이다.

강태공(姜太公)이 제왕학 교과서인 『육도(六韜)』에서 “한 사람을 죽여 삼군(三軍)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다면 그를 죽이고, 한 사람에게 상을 주어 천하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상을 주라”고 했다. 한 사람을 벌해 다른 사람에게 경고한다는 의미로, 공포심을 극대화해 뜻하는 바를 도모한다는 말이다. 『한서(漢書)』는 ‘하나로써 백을 경고하면, 모든 사람이 복종하게 된다. 공포감은 스스로 새롭게 변화시킨다(以一警百, 使民皆服, 恐懼改行自新).’고 했다.

2013년 12월 조선중앙통신은 당시 장성택 실각과 관련, “장은 겉으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 순종하면서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는” 양봉음위(陽奉陰違)식의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며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 모시기 위한 사업을 외면하고 각방으로 방해하는 배신행위를 감행하였다”고 죄상을 밝혔다. 부자(父子)간에도 "재산은 나누어도 권력은 나누지 못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몰각, 방심한 자업자득이었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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