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54)이 작품 '채식주의자'로 한국 최초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가운데 경기도교육청이 해당 작품을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해 폐기한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1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한 누리꾼은 지난 11일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한강 작품 '채식주의자'를 조속히 초·중·고등학교에 다시 배치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2528권을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해 폐기했다는 주장이다. 민원을 제기한 누리꾼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극찬한 채식주의자를 다시 배치하고,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 보니 경기도교육청 수장인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을 향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논평에서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영예를 훼손시키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졸속행정으로 경기도민을 비롯한 세계인이 공분하고 있다"며 "채식주의자 등 우수도서로 평가받은 도서 폐기는 임 교육감의 편향된 교육 철학에서 초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화는 행정이나 정치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임 교육감은 지금이라도 성 관련 유해 도서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고 경기도 교육에 블랙리스트 고통을 덧씌우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채식주의자' 유해도서 지정 논란이 제기되자 경기도교육청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기도 내 모든 학교 도서관에서 '채식주의자'를 폐기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수성향 학부모단체는 학생들에게 유해하다고 주장한 책을 지목하면서 일부 학교 도서관에 해당 책들이 비치돼 있다고 지속해서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교육청은 같은 해 9~11월 교육지원청에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이 담긴 공문을 전달하면서 각급 학교가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도서관운영위원회를 열어 유해 도서를 정하도록 했다.
공문에는 보수성향 학부모단체 주장이 담긴 내용을 첨부했고 일부 학교는 유해 도서를 정할 때 이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약 2490개교가 2517권을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판단해 폐기했다. 학교당 책 1권을 유해 도서로 판단해 폐기한 셈이다. 다만 소설 '채식주의자'를 폐기한 학교는 단 1곳으로 확인됐다. 해당 학교는 '채식주의자' 내용 중 성과 관련된 일부 내용이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교육청 측은 도서 폐기 과정에서 특성 도서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경기도교육청의 이 같은 해명에도 '채식주의자' 검열과 통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전교조 경기지부는 성명을 통해 "학생 보호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배움을 차단한 경기도교육청의 무분별한 검열은 폭력"이라며 "학교 재량이라는 핑계 뒤에 숨지 말고 성교육 도서 폐기를 조장하고 압박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