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전날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공개매수를 결의했다. 공개매수가는 주당 83만원으로, 4일부터 23일까지 20일간 총 320만9009주의 고려아연 주식을 취득한다. 전체 고려아연 주식의 15.5%에 달하는 수치다. 자사주 매입을 위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고려아연은 1조원 규모 사모사채를 발행하고 금융기관에서 1조7000억원을 차입할 예정이다.
베인캐피탈은 최 회장의 우군(백기사)으로 4300억원을 투자해 고려아연 주식 51만7528주(전체 주식의 2.5%)를 매입한다. 공개매수가는 고려아연과 같다.
이를 두고 최윤범 회장은 "회사, 주주, 임직원, 협력업체를 지키고 지역사회와 국민들의 고려아연 해외 매각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취득한 자사주를 향후 적법하게 전량 소각함으로써 주주가치를 확고히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하려면 고려아연 주식 7% 정도만 더 매입하면 된다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실제론 유통주식의 3분의 2에 달하는 18%를 사들인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 회장은 "확실한 방어를 위해 15~18%까지 공개 매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 회장의 이번 자사주 매입에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는 사법 리스크다. 고려아연 단일 최대주주인 영풍은 2일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결정에 찬성한 사내·사외 이사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와 함께 법원에 자사주 매입을 멈추게 해달라는 추가 가처분 신청도 했다.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하면 법원 판단은 공개매수가 끝나기 전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은 즉각 멈추게 된다.
둘째는 MBK-영풍이 자사주 매입에 맞서 4일 공개매수가를 또다시 올릴 가능성이 큰 점이다. MBK 측은 4일까지 고려아연 지분을 최소 7% 이상 공개매수로 사들여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공개매수가 무산되는 만큼 개인·기관투자자들이 구미가 당길 제안을 추가로 할 전망이다.
산업계에선 고려아연 지분 1.85%를 쥐고 있는 계열사 영풍정밀 공개매수와 백기사 합류·이탈 등의 변수가 큰 만큼 MBK-영풍과 고려아연의 대립이 내년 주총 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자사주 매입으로 기존 지분 가치가 올라가고 양측 지분 비율이 비등한 만큼 국민연금이 MBK-영풍과 최 회장 가운데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는지 여부에 따라 경영권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면 국민연금이 공개매수에 응해 차익을 실현하는 게 최선이지만, 국가기간산업의 일방적인 해외 매각을 막는 것도 연기금의 역할인 만큼 당장 고려아연 지분을 대량 매각할 가능성은 작다. 조만간 열리는 국회 산자위 국감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김병주 MBK 회장, 강성두 영풍 사장과 최 회장의 설전을 듣고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한편 최 회장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공개매수에 영풍도 참여할 수 있고 장 고문 일가와 동업 관계도 복구하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지만, MBK와 영풍 간 계약이 발목을 잡아 응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실제로 MBK-영풍의 공개매수신고서에 따르면 공개매수자인 영풍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10년간 보유주식을 MBK 외에 제3자에게 처분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양측이 상대방을 배임, 허위사실 유포 등을 이유로 고소를 진행한 만큼 MBK-영풍과 고려아연 간 감정의 골은 한층 깊어질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