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사모펀드와 재계의 해묵은 경영권 대결 구도가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사례로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악덕 기업사냥꾼과 잠재적 희생자' 간 대립이 현재는 '소액주주와 지배주주 간 지분·의결권 경쟁'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4일 산업계·금융투자업계에선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사례가 사모펀드의 적대적 기업 M&A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 기조와 맞물려 주주권 보호 인식이 부각되며 단순 투자를 넘어 기업의 경영 개선을 요구하는 행동주의에 비춰봐야 한다는 얘기다.
한 사모펀드운용사 관계자도 "기업 M&A 관련 여론 지형에서 주주의 권리를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난다"면서 "MBK파트너스가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하겠다' '소액주주 권리를 대행하겠다'는 명분으로 적대적 M&A에 나선 것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증권가는 고려아연에 이어 지분 구조가 취약한 국내 기업이 적대적 M&A에 노출되는 사례가 더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M&A에 나선 사모펀드와 기존 경영진 간 '비전 경쟁'을 통해 주주를 설득하고 지분 우위로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거처럼 외국 자본의 기간산업 기술 탈취, 국부 유출 위협으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경영진에게 제기된 비리나 배임 의혹이 제대로 공시돼 왔는지, 현 경영진과 인수를 시도하는 쪽이 어떤 경영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등 기업 정보가 제공돼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해외 자본의 기업 M&A 시도를 애국심에 호소해 (반대하면서) 부정적으로 봐 왔는데 순수 국내 자본이라면 어떻게 볼지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재계 입장은 다르다. 지배주주 권한을 견제하는 장치는 강화됐는데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제도는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자사주 매입이나 '백기사'를 동원하는 등 우호지분을 통해 의결권을 많이 확보하는 것 외에 적대적 M&A 시도에 대항해 경영권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며 "소액주주를 등에 업었다 해도 M&A에 나선 사모펀드의 목적은 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것으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장치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