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야 할 한가위 명절 내내 혹시 모를 사고에 걱정이 많았다. 의례 일가친척이 만나면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묻는게 일상이지만, 이번만큼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연휴 첫날부터 청주의 한 임신부가 위급한 상황에서도 산부인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 75곳에서 이송을 거부당했다는 뉴스에 응급의료 공백에 대한 심각성이 부각되었다.
명절 전 총리까지 나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전달하였고, TV를 봐도 아래에 자막으로 노심초사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대한 안내가 불안감을 더 크게 하였다. 다행히 걱정하리만큼의 큰 사고가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았지만 명절이 지난 이후에도 안심하긴 어렵다.
의사 선생님, 혹시 수시, 정시, 다 이해하시나요?
나이가 50이 넘으신 분이라면 본인이 공부하던 시절에는 수시, 정시가 무엇인지 모르셨어도, 자녀가 있다면 대학입시에 관심을 가져보셨을 것이다. 물론 바쁜 의료활동에 자녀 교육에는 많은 시간을 쏟지 못하셨을 수도 있어 말씀을 드리면, 현재의 입시유형은 크게 수시와 정시, 그리고 편입학으로 나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수능 시험일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통제할 정도로 교육과 입시가 중요한 나라이다. 그럼에도 주로 수능점수로만 선발하는 정시와 달리 학교생활기록부, 논술 및 적성검사 등이 복합된 수시전형 선발 비율은 2002년도 28.8%에 불과했으나 이후부터 점차 증가하게 되면서 2024년도 수시 선발비율은 79%, 2025학년도 79.6%, 2026년도에는 79.9%를 거의 80%가 수시전형에서 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수시 접수가 마감된 시점에 의료계의 이러한 주장은 사회와 대학 입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알았다면 침묵하면 된다. 자신들의 위치가 높다면 자신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그 영향력도 크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물론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대법원에서 의대 증원 취소 소송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지 이미 석달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해당 사항도 의대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 18명이 제기한 재항고를 거쳐 최종 기각된 사항으로 많은 언론에서 법조문을 해석해 기각사유를 알려주었다. 의대 증원은 공익이 더 크다는 그 취지와 더불어 수험생들과 교육현장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말이다.
그럼 공부 잘해 의대에 들어가셨을 텐데, 우리 교육에 문제가 많긴 한가보다. 과거 암기 교육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지던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수학능력고사가 도입된 이후 대학의 입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의대가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번 의대증원으로 인해 대학생들의 대학 이동은 다시금 불거질 전망이다.
말이 나왔으니, 의대정원 증대 문제는 입시만의 영향이 아니라 대학생들의 학교 이동을 통한 대학 서열화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지방의 학교들은 입시 정원을 채우는데도 어렵지만, 이탈하는 학생을 막는 것 역시 버겁다. 지방 소재 대학생들은 서울 소재 대학으로 소위 인(in) 서울 대학 학생들을 다시 주요 상위권 대학으로 상위권 대학 학생들은 의약계열 등으로 갈아타기 위한 상황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더군다나 어렵게 들어 간 의대를 마치고 수련병원을 떠 받쳐온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떠난지 반년이 지났다. 우리 사회로서는 엄청난 손실이다.
옛부터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였다. 말 그대로 국가와 사회발전의 근본초석이기 때문에 ‘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 이라는 뜻이 교육에 있다는 의미이다. 과거 다녔던 동네 서당에서 교육(敎育)의 교(敎)라는 한자는 효(爻)와 자(子), 복(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상과 마주치는 제자에게 스승이 회초리로 깨우침을 주는 스승과 제자사이의 베품과 본받음이 동시에 담겨있는 단어이며, 또한 육(育)은 자녀를 착하게 만든다는 의미라 배웠다.
교육(敎育)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교육은 미성숙 상태의 어린아이를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위에서 모범을 보이고 베풀면서 격려하고 아래에서 이를 공경하고 본받으며 따르도록 하는 의도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의대 정원을 줄인 뒤 오랫동안 단 한명도 늘리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사회의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의 정점에 의약계열이 있다.
선망되는 소수 일자리의 지나친 고수익은 사회의 반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세계적으로 명문대 출신 고위층에게서 자신이 사회나 공동체로부터 혜택을 받았다는 인식은 점차 사라지고, 내가 잘나서, 내가 능력과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소위 ‘능력주의’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에 씁쓸한 마음이다. 과연 이들의 성취가 진정 혼자만의 성취라 할 수 있는가?
물론 이들의 성공은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개인의 노력과 수고가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모두가 선망하는 그러한 자리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예상되는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 수준의 불평등한 노동시장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봐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生態界)는 상호의존, 공생과 공진화, 경쟁과협력, 가치창출과 공유 등을 핵심 개념으로 하고 있다. 생물은 누구나 생태계에서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역할을 행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의미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묵묵히 환자 곁을 지키고 계신 의사 선생님들처럼 부와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수반한다.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오만, 사회적 엘리트에 대한 반감 등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는 더이상 정의롭지도 지속가능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표준·지식학과 교수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