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달 서울 시내 중상급지로 분류되는 지역에 있던 본인 소유 아파트를 팔고 강남 지역 아파트를 매수했다. 모자라는 돈은 전세 세입자를 구해 충당했다. 새로 산 집에 세입자를 들였으니 자신이 살 집은 경기도 외곽에 전세를 구했다. 부족한 전세금 역시 대출로 메웠다. A씨는 "집값이 매일 천정부지로 치솟으니 갭투자 방식으로라도 집을 매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행히 전세대출이 있어 당장 살 집을 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대출을 악용한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수)’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강남 갈아타기’ 목적인 갭투자가 대표적이다. 강남 밖에 있던 기존 집을 팔고 강남권 아파트를 세입자 전세대출을 끼고 매수하는 방식이다. 당장 살 집 역시 전세 대출로 구한 뒤 시세 차익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전세대출 규제에서 빠진 분양권·입주권도 갭투자 활용 수단이 되고 있다. 분양권이나 입주권 보유자는 무주택자로 전세대출을 최대 5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이에 기존 집을 판매한 자금으로 강남권 아파트 분양권을 구매하는 대신 전세대출로 전셋집에 들어간다. 전세대출로 사실상 강남권 아파트 갭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문제는 갭투자가 주로 전세대출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다른 대출 대비 실행이 어렵지 않고, 3대 보증기관이 최대 100% 대위변제해주기 때문에 은행 역시 비교적 쉽게 자금을 내준다. 담보 없이 내주는 수억 원대 전세자금은 결국 갭투자에 활용되고 실수요자 피해로 이어진다.
전세대출 대량 실행은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는 한편 실수요자 주거난 심화로도 이어진다. 또 보증보험 요건을 갖추지 못해 자칫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게 된다. 2022년 대규모 전세 사기도 받기 쉬운 전세대출과 최대 100% 보증 보험이 원인이었다.
갭투자 주요 대상은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큰 지역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 지수는 지난 7월 기준 5년 이하 신축 아파트가 98.1인 데 반해 20년 초과 아파트는 94.6으로 전 연령별 아파트 중에서 가장 낮았다. 최근 강해진 신축 아파트 선호 현상을 일컫어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아파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매매가 대비 점차 높아지는 전셋값은 더 쉽게 갭투자를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보다 적은 자금으로 아파트를 매수하고, 집값 상승 시 큰 시세 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지난 7월 53.9%로 2022년 11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대규모 전세사기 이후 계속 줄었던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세대출 규모도 올해 들어 다시 반등하고 있다. 지난 4월(117조9189억원)부터 지난달(118조8363억원)까지 4개월 연속 늘어 9174억원가량 늘었다. 다시 갭투자가 늘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