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석유화학, 섬유에서 화장품 및 김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모든 수출업체들이 중국 경쟁업체들의 밀어내기식 저가 수출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특히 철강, 석유화학 산업의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대표적으로 포스코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0% 가량 감소했고 현대제철은 영업이익이 78.9%나 급감했다. 또한 주요 석유화학업체들은 핵심 사업부의 손실이 날로 가중되는 가운데 공장 가동 중단, 시설 확장 연기 등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중국 간의 무역 분쟁에 따른 수혜를 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전기차, 반도체, 태양광 등 첨단 산업을 대상으로 관세를 비롯해 각종 제재를 가함에 따라 그 반사 효과를 한국업체들이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산업통산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은 "중국의 공급과잉에 대한 많은 얘기들은 주로 전기차, 태양광 및 배터리와 관련해 서방과의 무역 분쟁에 치우친 면이 있다"며 "하지만 이 문제(중국 공급와잉)는 녹색 산업 분야를 넘어 글로벌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 달 한국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70%는 이미 중국 저가수출 공세로 인한 피해를 체감하고 있거나, 혹은 앞으로 예상된다고 답했다. 특히 동남아, 중동, 중앙아시아 및 라틴아메리카 등의 수출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중국 수출품의 평균 가격은 매월 하락하면서 해당 기간 중 총 10.2%가 하락한 반면 한국 수출품의 평균 가격은 동기간 중 0.1% 하락하는데 그쳤다.
이미 중국의 수출품 가격이 한국보다 낮았는데, 내수 부진에 처한 중국업체들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해외 시장에 저가로 상품을 내다 팔다 보니 가격차가 한층 확대된 것이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중국이 미국과 유럽에서 벗어나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양날의 검처럼 작용한다"며 "미국 시장에서는 중국의 빈 자리로 인해 더 많은 수출 기회가 있겠지만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카자흐스탄 등을 향한 중국의 수출이 올해 많이 늘어나면서 그 시장들에 있는 한국 기업들에게 도전이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업체들의 기술적 우위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중국업체들 대비 지속적인 기술적 우위를 가졌다고 응답한 업체는 26.2%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 73.3%는 향후 5년내 중국업체들이 기술적 수준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한국업체들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덤핑 제소하고, 중국업체들의 기술 탈취에 대처하는 등의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한국 경찰에 신고된 12건의 기술 유출 사건 중 중국은 10건을 차지할 정도로 중국업체들의 기술 탈취 시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올해 한국의 중국업체들을 겨냥한 반덤핑 제소 건수는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FT는 짚었다.
통상 전문가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까지 한국은 기술 유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투자에 관대한 태도를 보여왔다"며 "하지만 한국은 이제 경제 안보를 위해 보다 정교한 조치가 필요하다. 평탄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