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가까이 경쟁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여온 시중은행들이 이제는 앞다퉈 실수요자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가계대출 급증세를 막되 실수요자는 알아서 골라 배려하라'는 금융당국의 모순적 주문에 일선 창구는 물론 예비 차주까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은행은 7월 말부터 은행별로 10여 개에 달하는 가계대출 제한 대책을 내놓았다. 실수요자 허용 조건 등을 포함하면 대출 규제 방식은 더 복잡해진다.
1주택자가 새로 전세대출을 받을 때도 은행마다 조건이 다르다. 신한은행은 13일부터 이미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신규 분양(미등기) 주택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제한한다고 이날 밝혔다. 우리은행도 예외 사례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KB국민은행은 아직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가계대출 제한 방식이 연일 바뀌자 일선 창구 직원은 대출 상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은행은 아예 창구 직원을 위한 교육 자료를 따로 만들어 고객에게 응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자금이 필요한 차주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대출을 받으려는 소비자들은 청첩장, 매매계약서를 통해 스스로 실수요자임을 주장하며 대출 규제 예외를 바라고 있다. 은행들도 이들이 예외 사례에 해당하는지를 직접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실수요자 요건은 은행 판단에 따라 추후에도 계속 바뀔 수 있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 등은 심사 전담팀을 꾸려 실수요자 조건 여부를 확인하고 있지만 개별 사안이 워낙 다양해 현장에는 당분간 혼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 취급 요건이 느슨한 은행으로 대출 쏠림 현상이 나타날지도 지켜봐야 할 변수다. 현재 하나은행은 주택 보유 여부에 따른 취급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고, NH농협은행은 다주택자 중 수도권 주택 매입에 한해서만 주담대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당장 유의미한 대출 잔액 변동은 없지만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계속되면 금융 소비자들이 문턱이 낮은 은행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자율 관리를 두고 은행권에선 정해진 공급 규모 안에서 실수요자 혼란을 막으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예외사항을 만들고 있다"면서도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잦은 기준 변화와 은행 간 다른 정책은 일선 창구와 소비자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