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인권은 국제 사회에서 환경에 버금갈만큼 중요하지만 아시다시피 국내서는 이슈가 별로 없다. 그럼 도대체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지표로 우리 기업들이 평가를 받는다는 게 ESG 관점에서 맞는 건가.”
‘한국형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제도’ 수출을 목표로 연구단을 구성한 한국법제연구원이 ESG 데이터 관리 솔루션 전문기업 ‘i-ESG’와 함께 국내·아시아 중소기업용 지표의 윤곽을 처음 드러냈다.
법제연은 최근 ‘국내·아시아 중소기업을 위한 ESG 진단 및 평가 지표 개발 프로젝트’의 중간 보고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서 발표한 진단 세트는 중소·중견 기업들이 ESG 역량을 자가 진단할 수 있도록 위해 마련됐다. 일반·환경·사회·지배구조 4개 영역에서 33개 핵심 문항을 배점과 비배점 항목으로 추출해냈다. 김종웅 i-ESG 대표는 “가장 기본적으로 중소·중견기업들이 챙겨야 될 게 뭘 지를 중심으로 진단 세트를 만들게 됐다”며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보고서화해서 퍼포먼스들을 공개한다라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국제 공시 기준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최유경 경제인문사회연구회 E.S.G. 연구단장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기준과 국내 산업 분류 체계랑 비교를 해봐도 한 10% 정도 매칭이 안 되는 영역이 있다”며 취지를 밝혔다.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이미 하고 있는 ESG 분야도 잘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동인권처럼 할 이유가 없는 것들은 그냥 답변을 안하고 넘어가서 0점 처리되는 경우다”고 했다. 전홍민 성신여대 교수는 “산업과 기업 특성에 따라 탄소 집약도 계산이 달라진다”며 “유럽에서 발표한 공시 템플릿은 이런 특성이 반영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공급망 실사가 본격 시행되는 2026년 전부터 중소·중견기업에 ESG 관련 이슈를 수치화하고 보고서로 작성하라는 압박이 들어올 것이란 게 중론이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에서 고무 원재료를 가져다가 국내에서 가공해서 타이어를 여러 나라에 파는 중소기업이 있다면, 원산지에서 인권 유린이 안되는 지 고무류를 채취할 때 환경 파괴가 없는지 공급망을 관리해야 되는 의무를 갖게 된다.
김 대표는 “2021년에 국내 모 기업이 총 11개 공급망을 평가해서 엑셀로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2022년에는 27건을 받게 됐다”며 “독일 기업이 EU의 규제 때문에 리스크가 생기면 거래를 중단할 것인데 실제 그런 거래 중단 사례들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법제연과 i-ESG는 올해 안에 지표들을 고도화하고, 국내 및 아시아 기업들이 신속히 ESG를 진단할 수 있는 온라인 진단 플랫폼을 오픈할 예정이다. 법제연은 2019년 ESG 관련 법제를 마련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시작했으며, 2022년부터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정책적·법 제도적 대안 연구를 주관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E.S.G.연구단'을 출범시켜 국내 사정에 맞춘 ESG 제도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 단장은 "한국 혼자만의 목소리로 유럽발·미국발 규제들을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하고 연계를 구축하고 싶은 게 궁극적인 바람"이 "태국·대만·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 비슷한 세트를 꾸려서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지를 확인하는 것까지가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