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농심은 자사주 30만19주(발행주 대비 4.93%) 전량을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1주당 처분 가액은 기준 주가에 15% 할증률을 적용한 46만1500원으로 처분가액 총액은 1384억5876만원이다.
농심은 지난달 30일 물류단지와 공장 증설에 투자하려는 목적으로 자사주 전량을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교환사채로 자사주를 처분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시설 투자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농심은 최근 10년간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비롯한 사채를 일절 발행하지 않았다. 농심의 자산건전성이 뛰어나고 내부 자금으로 운용을 충분히 해왔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농심이 올 3분기에 도입되는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적용받지 않기 위해 EB 시장에 등장했다고 보고 있다.
개정안에는 자사주 취득 이후 보유 목적과 처리 계획에 대해 상장법인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사회에서 승인받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정부가 상장사 대상으로 자사주 소각을 유도해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농심 EB 발행에 참여한 한 기관투자자는 "농심과 같이 자산건전성이 뛰어난 기업이 시설자금에 투자하기 위해 EB를 발행하는 대신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며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자사주 소각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차라리 EB로 현금화하자는 분위기에 편승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대기업들에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4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일본을 찾아 밸류업 프로그램 모범사례를 평가하며 국내 주요 기업들을 대상으로 선도적 밸류업 공시 참여를 당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편법으로 등장한 것이 EB 발행이라는 것이다.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 발행은 사전공시 대상에서 제외된다. 금융당국이 자사주 보유와 처분에 관한 공시 강화를 예고한 상황에서 기업이 자사주를 교환사채(EB)의 기초자산으로 활용하면 자사주 소각을 피해 이를 현금화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수개월 전부터 자사주를 EB로 처분하는 기업들은 늘고 있다. 공시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한 EB 발행 건수는 10건으로 지난해 8건을 넘어섰다. 특히 카카오, 호텔신라 등 주요 기업들이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EB에 나섰다는 점에서 '밸류업 우회'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 발행은 현재 예외 규정으로 두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언제든지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개정법을 시행할 수 있어 자사주 소각을 원치 않는 코스피 상장사들이 서둘러 EB를 발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