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세가 좀처럼 멈추지 않는 일본에서 1인분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정통 스시(초밥)'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초밥집이 점차 늘면서 주목받고 있다. 배경에는 일본 초밥 업계의 일손 부족 문제, 그리고 일본 소비자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비 추세가 맞물려 있다.
도쿄 히가시긴자역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최근 일본의 젊은 회사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초밥집이 있다. '스시 긴자오노데라 도류몬'(이하 '도류몬')이라는 이름의 초밥집으로, 평일에도 오후 4시 개점 전부터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도류몬'은 초밥 장인 양성을 목적으로 2022년에 문을 열었다. 매장에서 초밥을 쥐어 내주는 '이타마에'(板前ㆍ일식 요리사)들은 입사 3~5년 차의 초보 장인들이다. 이들이 초밥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주문은 스마트폰으로 받는다. 이처럼 베테랑 장인 대신 초보 장인을 고용하고, 초밥이지만 서서 먹는 스타일로 회전율을 높여 객단가를 낮췄다.
이 같은 변화는 정통 초밥을 제공하는 고급 초밥 전문점으로서는 파격에 가깝다. 손님들은 가게에 들어서면 보통 '오마카세'라 불리는 추천 코스요리를 맛보게 되는데, 이타마에가 눈앞에서 섬세하게 만들어 낸 초밥을 권하는 순서와 시식법에 충실히 따라 먹는 것이 '문화'였다.
또한 장인에게 의존하는 대신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을 택한 초밥집도 등장했다. 도쿄에서 회전 초밥집을 운영하는 ‘아부리 토라 재팬’은 숙성 참치 초밥, 직화구이 초밥 등 고급 메뉴를 제공하면서도 가격은 개당 120~500엔(약 1100~4600원)으로 낮췄다. 초밥 체인 '스시조시마루' 등과 같은 가격대다.
아부리 그룹은 캐나다에서도 일식집과 초밥 전문점을 전개해 미슐랭 스타를 획득하기도 했다. 정통 일식 제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지만 가능하면 장인의 손을 빌리지 않는 방식으로 매장을 운영한다. 초밥 재료의 숙성은 숙성 전문 냉장고에 맡기고, 샤리(초밥의 밥 부분)는 로봇이 잡는다. 조리 담당자는 절반 이상이 아르바이트생이다.
나카무라 세이고 사장은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면서 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초밥을 캐주얼하게 먹을 수 있는 가게를 목표로 했다"면서 "2025년 안에 2곳을 더 오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추세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일본 소비자들의 요구와도 맞물린 부분이 있다. '리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가 물가 상승으로 절약 의식이 높아졌다고 답한 반면, 가끔은 사치스러운 지출로 외식을 택한다고 꼽은 응답자가 55%로 가장 많았다. 즉 일반 체인점이 아닌 정통 초밥집에서 '저렴'하게 '비싼' 초밥을 먹고자 하는 수요를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초밥집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조사기관 후지경제에 따르면 2024년은 인바운드(방일 외국인) 수요 확대로 일본 초밥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9% 성장한 6430억엔(약 5조9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반면,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일손 부족으로 인해 경영 압박을 못 견뎌 도산에 이르는 초밥집도 늘고 있다.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6월 초밥집 도산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6배로 급증했다.
앞서 소개한 '스시긴자 오노데라' 본점에서도 초밥 장인 부족으로 평일 영업을 제한해 운영 중이다. 사카카미 아키후미 총괄 총주방장은 닛케이에 "인재 육성이 가장 큰 과제"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식문화인 초밥도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의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이며, 인재 육성을 만년 과제로 삼고 있다. 베테랑 요리사도 좋지만 새로워진 초밥 문화를 향한 기대도 커진 만큼 초밥 업계에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