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그간 정신건강 투자는 소홀했죠. 정신건강 예방책이라는 건 신체건강하고 똑같습니다.”
김태희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이 지난달 26일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2026년까지 서울시민 10만명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게 목표"라며 이같이 말했다.
반면 핀란드는 일찍이 정신건강 관리를 국가 과제로 보고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데 성공했다. 극한 기후로 인한 고립감, 경제위기, 주변국 침입, 산업화 등은 핀란드를 20세기 내내 세계 최고 수준 자살률 국가로 이끌었다. 핀란드는 1980년대부터 자살 위험군에게 선제적으로 상담·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한편 ‘사회적 접촉’에 중점을 두고 관리했다. 영국과 일본 역시 국가 차원에서 자살 예방 대책을 수립하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효과를 거뒀다.
우리나라 역시 극심한 경쟁사회, 긴 노동시간 등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지만 김 국장은 정신건강에 국가적인 투자도 보태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 2배 확대 기조에 맞춰 서울시는 ‘생애주기별 마음건강사업’을 촘촘히 추진한다. 그는 "사회적 인식이 두려워 마음건강 관리를 꺼리는 일이 없도록 세대별로 세심하게 설계했다"며 “여러 세대별로 원인들이 있는데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 다 해결이 된다. 분명히 투자하고 노력하면 개선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생애주기별 마음건강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청년, 20·30대 사망률 원인 1위가 자살이다. 그 원인 중에 하나가 세대 간에 여러 가지 거울 효과다. 노인이 행복하게 살아야 젊은이들이 '나도 은퇴 후에 저런 삶이 있구나, 즐거울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노인들이 불행하면 '나도 늙으면 저렇게 힘들게 살겠구나, 마음이 고립돼서 살겠구나'라고 불안해 한다. 젊은이들이 구직을 단념하고 결혼하지 않고 저출생 문제가 대두되는 건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이지만 정신건강 문제도 한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집값이 비싼데도 결혼하려면 집을 사야 하고, 혼외자를 터부시하며, 젊은이들을 옭아매는 여러 가지 사회적 규범이 불안을 자극하기도 한다. 행복한 젊은이들은 출산 의지가 강한데 당장 마음이 힘들고 우울증 있는 사람이 결혼해서 애 낳는 거 보셨나. 젊은이들의 불안은 기성세대나 노인의 불행을 보면서 오기도 한다.
중장년도 고립감 많고, 노인 자살률이 OECD 1등으로 단연 높은데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특히 전쟁 전후 세대는 지금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 문화적 격차보다 훨씬 격차가 심하다. 일상적인 대화 외에 삶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대화는 어렵다.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고립감도 많고 해서 그런 것들을 풀어주기 위한 사업을 설계해서 진행하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인 데다 젊은 층 자살률도 높다. 최근 5년간(2019~2023년) 1인 가구 자살사망자 절반가량(43.8%)이 34세 이하 청년이었다. 또 2022년에는 전체 자살사망자 수가 감소한 와중에도 10대 자살률은 늘었다.
"'나약하다'는 표현은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낮거나 이를 들어보지 못한 일부 기성세대의 언어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건 가부장적인 문화다. 권위와 체면을 중요시하는 권위적인 문화나 조직 내에서 자살률이 높다.
학생들은 학교생활이나 가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정신과 관련된 집단 검사를 3년 주기로 하는데 결과가 부모님과 교사한테 통보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드러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보다 발굴되는 아이들이 굉장히 적고, 그 적은 인원이 또 최종적으로 서비스를 받고 치료받는 비율은 훨씬 더 낮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도 대두되는데, 청년들이 장기 실업 상태에 있거나 아예 구직 활동도 안 하는 상태가 사실 마음건강과 다 연관돼 있다.
목표는 하나다.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낙인감 없이 상담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상담 교사를 대폭 늘리고 청소년들이 언제든 상담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상담 시설을 대폭 확충한다. 야간과 주말에도 운영하는 ‘청소년상담소’를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등에 설치하겠다. 그리고 상담 인력의 질을 높이고 아이들이 낙인감 없이 상담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예정이다. 마음건강 심층평가, 학부모 상담, 컨설팅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학생들이 낙인효과나 진학 시 불이익을 받을까 봐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내에서 상담받고 적절한 상담기관까지 연계받아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맞춤형으로 지원하겠다."
-중장년층은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중장년층 우울증은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때가 많다. 또 서울시민 4명 중 1명이 대사증후군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50대 이상은 대사증후군 보유율이 50%로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다. 마음건강은 적시에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손목닥터9988로 평소에 간편하게 마음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 결과에 따라 명상, 수면, 힐링음악 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일상생활에서 식단관리, 운동, 건강관리 미션 수행 등을 통해 대사증후군 유병률을 낮추는 게 목표다."
-초고령화 시대에 어르신 건강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실제 6년째 칩거만 하던 어르신이 건강장수센터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사회활동까지 하게 된 사례가 있다. 센터에서는 지역주민을 '장수헬퍼'로 양성한다. 노인이 서로를 돌보는 노노(老老)케어와 또래그룹 간 건강소모임을 통해 고립된 어르신의 참여활동을 촉진하고 신체적·정서적·사회적 치료와 돌봄을 유도하고 있다. 시는 보건지소를 건강장수센터로 재편해 자치구별 3~4개 거점센터로 조성하고 있다. 올해 은평구, 금천구 등 2개구에서 시범운영하고 2030년까지 전 자치구로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시민 마음건강을 챙기기 위한 마음투자지원사업이란 무엇인가.
"우울, 불안 등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시민에게 전문적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마치 몸이 아플 때 병원을 찾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서비스를 원하는 시민은 △정신건강복지센터 △대학교 학생상담센터 △Wee센터 △정신의료기관 등 전문기관에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는 의뢰서나 소견서를 받아 동주민센터에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자립준비청년이나 보호연장아동은 보호종료확인서 또는 시설 재원증명서만 있으면 신청할 수 있다. 이후 거주지 보건소를 통해 전문가 일대일 대면심리상담 서비스를 총 8회 받을 수 있는 이용권(바우처)을 드린다. 120일 안에 거주지와 상관없이 원하는 서비스 제공 기관에 예약한 후 이용하면 된다."
-서울형 심리서비스 체계 구축 일환으로 '서울시광역심리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왜 지금 광역심리센터가 필요한가.
"단순히 심리 상담 서비스를 넘어 고품질 심리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공공과 민간 심리 전문기관의 모니터링을 통해 신청 대상자 특성, 상담 내용과 효과성을 검증하고, 상담인력 역량 강화를 위한 자격 기준별 보수교육을 체계화하는 등 시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영국 IAPT(근거 기반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 모델 등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헌 심리지원서비스를 벤치마킹해 서울형 근거 기반 심리지원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VR 가상현실 인지행동치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인지행동치료, 행동 활성화 프로그램 등 디지털 서비스를 개발하여 개별 특성에 맞춘 최적화 심리지원을 다수에게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공급도 계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