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에서 맹활약을 한 태극전사들이 온 국민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금의환향했다. 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각종 행사에 초대받고 방송에 출연하는가 하면 광고 모델이 되는 등 저마다 활발한 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배드민턴협회를 겨냥해 작심 발언을 한 안세영만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아 웬지 안쓰럽다.
"내 승리의 원동력은 '분노'였다." 안세영이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안세영은 누구도 자신의 발언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때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말을 토해냈다. 넘치는 자신감과 남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무장한 세대임에도 무려 7년을 기다린 끝에 터뜨린 분노였다. 개인적으로 운동선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에, 국가적으로도 28년 만에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을 딴 감격스런 날에 안세영이 자신이 소속된 협회를 향하여 터뜨린 분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배드민턴협회가 즉각 안세영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함으로써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감정적으로 비치는 협회의 대응은 적어도 안세영이 고대한 어른, '한 번은 고민해 주고 해결해 주는' 그런 어른의 모습은 아니다. 다른 선수들의 피해를 우려한 안세영이 일단 확전을 자제하고 말을 아끼고 있지만, 언론의 열띤 취재 속에 안세영이 7년간 참아왔다는 분노의 실체가 양파껍질처럼 하나둘 밝혀짐에 따라 배드민턴협회는 싸움도 하기 전에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배드민턴협회는 무능하고 둔감했다. 안세영은 타고난 천재성으로 15살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된 이래 늘 막내였다. 따라서 끊어진 라켓 줄 교체, 방 청소, 빨래 등 잡일은 늘 안세영 몫이었다. 구시대적 악습이다. 시정을 요청하자 오래된 관습이라 당장 없앨 수 없다고 했다는 코칭스태프의 반응은 괴이하기까지 하다. 이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협회는 스폰서나 계약 같은 금전적 문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용품 선택권 등 간판선수의 다양한 요청을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려는 노력 없이 묵살로 일관해 왔다.
배드민턴 국가대표 운영지침 중 '지도자의 지시에 복종할 것'이라고 씌여진 조항은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대한체육회에서도 이미 수년 전에 문제점을 인정하고 폐기한 문구다. 시대에 뒤떨어진 폐쇄적 조직문화의 일단이 엿보인다. 배드민턴협회의 임원진만 40명이라고 한다. 축구협회보다 많은 수의 임원이 왜 필요한지 궁금해 하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2018년 아시안게임 때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게 하고 임원들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평소 협회가 선수들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어떠한지를 웅변한다.
술자리든 밥 먹는 자리든 여럿이 참석하는 모임에서 유독 발언점유율이 높은 사람이 꼭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개 목소리가 크다.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면 분위기를 띄우는 순기능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좌중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누군가의 초대를 받고 손님으로 간 경우라면 더욱 문제다. 자칫 주인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본분이나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위인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한 옛사람들의 지혜가 만들어낸 성어가 훤빈탈주(喧賓奪主)다.
훤(喧)은 '떠들다, 시끄럽다, 왁자지껄하다'라는 뜻이고 빈(賓)은 손님이라는 뜻이니 훤빈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손님, 즉 주인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는 손님이다. 훤빈탈주는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손님의 목소리가 주인의 목소리를 압도하여 주인의 자리를 빼앗는다, 즉 목소리 큰 손님이 주인 노릇 한다는 말이 된다. 외래의 부차적인 것들이 원래의 주요한 것들의 지위를 차지하는 상황을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주객전도'와도 맥을 같이 하는 표현이다.
훤빈탈주는 청나라 건륭제 때 양의치(楊宜治)가 사절단 일원으로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와 작성한 견문록 《러시아 여정 일기(俄程日記)》에서 유래했다. 이 성어의 적용 범위는 넓다. 대인관계에서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것을 비롯하여 신흥 사물이나 외래문화가 본토 문화의 주도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등의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가 하면, 제품의 부가 기능이 지나치게 두드러져 오히려 주요 기능을 가리는 것을 설명하는 등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사용된다. 성어 훤빈탈주는 우리에게 주객 관계를 파악하고, 생활과 업무에서 경중완급을 구분하여 본말전도를 피하라고 상기시켜 준다.
한국 양궁이 여자 단체전 10연패와 전종목 석권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올림픽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양궁협회는 국민들의 사랑과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다. 비결이 무엇일까? 양궁협회는 선수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고 주인 행세를 하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선수들과 진심어린 소통을 하면서 공감과 신뢰를 쌓았다. 그렇기에 한순간 반짝 승리에 그치지 않고 불멸의 양궁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선수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성공신화를 쓴 비결도 다름아닌 '서번트 리더십'이었다.
배드민턴협회의 행태는 훤빈탈주의 전형이다. 협회는 안세영 선수와 진실공방을 벌이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본원적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협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회장과 임원진인가, 선수들인가?" "협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회장과 임원진을 위해서인가, 선수들을 위해서인가?" 배드민턴협회는 이런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까?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어디 술자리, 밥 먹는 자리에만 있으랴. 여의도에 모여 앉아 입만 열면 국민의 공복(公僕)임을 자처하면서 정작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또 무엇을 혐오하는지 조금도 안중에 두지 않고 세상이 떠나갈 듯 요란스레 정쟁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언제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섬긴 적이 있던가. 안세영의 용기있는 도발이 우리 사회 각계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내 승리의 원동력은 '분노'였다." 안세영이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안세영은 누구도 자신의 발언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때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말을 토해냈다. 넘치는 자신감과 남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무장한 세대임에도 무려 7년을 기다린 끝에 터뜨린 분노였다. 개인적으로 운동선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에, 국가적으로도 28년 만에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을 딴 감격스런 날에 안세영이 자신이 소속된 협회를 향하여 터뜨린 분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배드민턴협회가 즉각 안세영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함으로써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감정적으로 비치는 협회의 대응은 적어도 안세영이 고대한 어른, '한 번은 고민해 주고 해결해 주는' 그런 어른의 모습은 아니다. 다른 선수들의 피해를 우려한 안세영이 일단 확전을 자제하고 말을 아끼고 있지만, 언론의 열띤 취재 속에 안세영이 7년간 참아왔다는 분노의 실체가 양파껍질처럼 하나둘 밝혀짐에 따라 배드민턴협회는 싸움도 하기 전에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배드민턴협회는 무능하고 둔감했다. 안세영은 타고난 천재성으로 15살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된 이래 늘 막내였다. 따라서 끊어진 라켓 줄 교체, 방 청소, 빨래 등 잡일은 늘 안세영 몫이었다. 구시대적 악습이다. 시정을 요청하자 오래된 관습이라 당장 없앨 수 없다고 했다는 코칭스태프의 반응은 괴이하기까지 하다. 이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협회는 스폰서나 계약 같은 금전적 문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용품 선택권 등 간판선수의 다양한 요청을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려는 노력 없이 묵살로 일관해 왔다.
술자리든 밥 먹는 자리든 여럿이 참석하는 모임에서 유독 발언점유율이 높은 사람이 꼭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개 목소리가 크다.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면 분위기를 띄우는 순기능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좌중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누군가의 초대를 받고 손님으로 간 경우라면 더욱 문제다. 자칫 주인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본분이나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위인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한 옛사람들의 지혜가 만들어낸 성어가 훤빈탈주(喧賓奪主)다.
훤(喧)은 '떠들다, 시끄럽다, 왁자지껄하다'라는 뜻이고 빈(賓)은 손님이라는 뜻이니 훤빈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손님, 즉 주인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는 손님이다. 훤빈탈주는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손님의 목소리가 주인의 목소리를 압도하여 주인의 자리를 빼앗는다, 즉 목소리 큰 손님이 주인 노릇 한다는 말이 된다. 외래의 부차적인 것들이 원래의 주요한 것들의 지위를 차지하는 상황을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주객전도'와도 맥을 같이 하는 표현이다.
훤빈탈주는 청나라 건륭제 때 양의치(楊宜治)가 사절단 일원으로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와 작성한 견문록 《러시아 여정 일기(俄程日記)》에서 유래했다. 이 성어의 적용 범위는 넓다. 대인관계에서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것을 비롯하여 신흥 사물이나 외래문화가 본토 문화의 주도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등의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가 하면, 제품의 부가 기능이 지나치게 두드러져 오히려 주요 기능을 가리는 것을 설명하는 등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사용된다. 성어 훤빈탈주는 우리에게 주객 관계를 파악하고, 생활과 업무에서 경중완급을 구분하여 본말전도를 피하라고 상기시켜 준다.
한국 양궁이 여자 단체전 10연패와 전종목 석권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올림픽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양궁협회는 국민들의 사랑과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다. 비결이 무엇일까? 양궁협회는 선수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고 주인 행세를 하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선수들과 진심어린 소통을 하면서 공감과 신뢰를 쌓았다. 그렇기에 한순간 반짝 승리에 그치지 않고 불멸의 양궁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선수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성공신화를 쓴 비결도 다름아닌 '서번트 리더십'이었다.
배드민턴협회의 행태는 훤빈탈주의 전형이다. 협회는 안세영 선수와 진실공방을 벌이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본원적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협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회장과 임원진인가, 선수들인가?" "협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회장과 임원진을 위해서인가, 선수들을 위해서인가?" 배드민턴협회는 이런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까?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어디 술자리, 밥 먹는 자리에만 있으랴. 여의도에 모여 앉아 입만 열면 국민의 공복(公僕)임을 자처하면서 정작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또 무엇을 혐오하는지 조금도 안중에 두지 않고 세상이 떠나갈 듯 요란스레 정쟁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언제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섬긴 적이 있던가. 안세영의 용기있는 도발이 우리 사회 각계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