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SK 이천포럼 2024는 AI 시대에 돈을 쓰는 기업이 아닌 돈을 버는 기업이 되기 위한 SK그룹 경영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게 업계 공통된 평가다. SK 계열사 대표들 사이에선 골드러시 시대에 금을 캔 사람보다 금을 캐기 위한 곡괭이와 청바지를 판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었던 것처럼 SK그룹이 AI 시대 곡괭이와 청바지가 될 수 있는 사업모델(BM)을 발굴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유영상 SK수펙스추구협의회 ICT 위원장(SK텔레콤 대표)은 이천포럼 2024 개회사를 통해 AI의 중요성과 SK그룹의 사업 방향에 대해 소개했다.
이어 "수요 측면에선 아직 AI로 제대로 돈을 버는 사업자가 없다"며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우려가 있음에도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곧 열릴 AGI(범용 AI)라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야 승자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AI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SK그룹은 AI 산업을 △AI 칩 △AI 인프라 △AI 서비스 등 세 가지로 나눠 정의했다. 유 위원장은 “AI 칩은 SK하이닉스가 HBM(고대역폭 메모리) D램 기술력으로 승기를 잡고 있는 만큼 향후 5년간 82조원 이상을 투자해 경쟁력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SKC 자회사인 앱솔릭스의 유리기판도 AI 칩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요소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AI 인프라와 관련해서는 SKT가 AI데이터센터에 과감히 투자해 리딩 컴퍼니로서 관련 솔루션 사업자로 BM을 확장할 것"이라며 "AI데이터센터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기존 코로케이션(상면 임대)울 대체할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에지(소형 단말기) AI 사업과 관련해 SK그룹은 '글로벌 텔코(이동통신사) AI 얼라이언스(GTAA)' 및 엔비디아와 협력해 대응할 방침이다.
다만 SK그룹은 빅테크처럼 AI데이터센터를 직접 구축하는 게 아니라 AI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될 계획이다. 유 위원장은 "글로벌 AI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면 최소 100조원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다"며 "더 싸고 효율적으로 AI데이터센터를 구축할 수 있도록 액침냉각 등 솔루션을 제공하는 BM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유 위원장은 빅테크의 AI 굴기에 대응하기 위해 SK그룹이 삼성전자·네이버 등과 힘을 합쳐 'AI 어벤저스'를 결성해 글로벌 AI 시장에 공동 진출을 모색하는 방안 등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AI 칩·인프라·서비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SK그룹 AI 3대 자산으로 HBM과 GTAA, SK이노베이션의 에너지 솔루션 등을 꼽았다. 그는 "이번에 합병하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아시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막대한 전기를 소모하는 AI 산업에서 LNG·태양광 발전 경쟁력으로 SK그룹에 굉장한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3대 자산을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이석희 SK온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하반기 실적 개선을 위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여러 가지 오퍼레이션(운영)과 임프루브먼트(개선)를 내부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며 "하반기에 잘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SK온은 글로벌 전기차 캐즘 여파로 올해 2분기 영업손실 4601억원을 기록했다. 출범 이래 11분기 연속 적자다.
이어 이 대표는 최근 전기차 화재와 내수시장 위축 우려에 대해 "그 부분은 조금 더 지켜볼 일"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