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의 예대금리차(여·수신 금리 차)가 26년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졌지만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 회복에 따른 대출 수요가 급증하면서 박리다매식 영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에 나서면서 예대금리차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은행권은 ‘이자 장사’ 비판이 재연될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 합계는 작년 상반기(8조969억원)보다 1.9% 많은 8조2505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에 기록한 최대 실적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올해 초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은행들은 손실 배상을 위한 대규모 부채를 인식하고도 이익은 더 늘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은행들이 적은 예대금리차에도 최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으로 기업·가계를 가리지 않고 대출 규모가 크게 확대된 점을 꼽는다. 올해 상반기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은 49조1000억원, 가계대출은 20조5000억원 늘었다. 작년 상반기(기업대출 39조8000억원·가계대출 4조1000억원 증가)보다 대출이 큰 폭으로 확대되면서 차익을 적게 가져가더라도 전체 이익이 확대된 것이다.
하반기 들어서는 예대금리차가 벌어지고 대출 증가세도 유지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에 나서면서 은행들은 지난달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대출상품 금리를 상향 조정했다. 대출 금리가 오르면 그 수요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택 거래가 늘면서 가계대출 수요는 여전히 강세다.
지난달 국내 은행권 기업대출은 7조8000억원, 가계대출은 5조5000억원 늘었다. 이달 들어서도 국내 5대 은행에서만 보름 사이 가계대출이 4조2342억원 늘어나는 등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최근 주택 거래량 추이를 봤을 때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예대금리차가 벌어지고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 은행들은 하반기 다시 한번 ‘역대급 이익’을 벌어들일 가능성이 크다. 당기순이익 확대는 은행이 이자 장사로 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론이 악화하면 정부가 다시금 ‘상생금융을 통한 사회환원’을 압박할 수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부동산 시장 반등과 시장금리 하락이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답답함을 토로한다. 시장 상황과 정부 정책에 따라 금리를 조정하며 대출을 운영했는데 ‘이자 장사’라는 화살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이 오를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자를 더 내더라도 대출을 최대한 많이 받고 싶을 것”이라며 “가계대출 증가세를 관리하려면 개별 은행의 금리 조정보다는 정책을 통한 수요 조절이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