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규홍의 리걸마인드] '미운오리'로 전락한 전기차...화재 책임 누가 지나

2024-08-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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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청라국제도시 지하 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책임 놓고 제조사·아파트 측 법적 공방 예고

정부, 국회도 관련 규제·입법 나서...전기차 화재 신속 대응 초점 맞춰져

경찰이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해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적인 친환경, 탈탄소 움직임에 힘입어 전기차 보급이 늘어난 가운데 최근 잇따른 화재로 각종 피해가 연일 발생하면서 졸지에 전기차가 '미운오리새끼'가 됐다.

전기차 화재는 주로 배터리 발열이 원인으로 추정될 뿐 구체적인 화재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고, 이에 책임 소재를 놓고 각종 의견이 분분하다. 계속되는 전기차 화재로 인해 소비자들은 줄줄이 전기차 구매를 취소하고 국회 역시 관련 입법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등 전기차를 둘러싼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화재 책임 누가 지게 되나
지난 2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인해 주차장에 있던 87대의 차량이 전소되고 793대 차량이 피해를 입었다. 주민 23명도 부상을 입었고 당시 화염으로 주차장 내부 온도가 1000도 넘게 치솟으면서 아파트 수도관, 설비까지 피해를 입으며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화재 사고를 일으킨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은 EQE 350 모델로 당시 충전 중인 상태도 아니었기에 사고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발화의 원인이 된 배터리 제조사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해당 차량은 중국 파라시스 테크놀로지(중국명 푸넝커지·孚能科技)가 생산한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라시스는 2009년 말 중국 장시성 간저우에 설립된 배터리 기업으로, LFP 배터리를 주력으로 하는 CATL·BYD 등과 달리 니켈·코발트·망간(NCM) 등 삼원계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다.

앞서 파라시스의 가장 큰 고객이었던 중국 베이징차는 지난 2021년 배터리 결함에 따른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은 뒤 파라시스와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왜 세계적인 명차 제조사인 벤츠가 파라시스와 손을 잡았는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이 구체적인 사고 원인 조사에 나선 가운데 만약 화재 원인이 차량 결함이나 배터리 문제로 밝혀진다면 차량의 제조사인 벤츠나 배터리 제조업체인 파라시스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당시 화재 현장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화재를 키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벤츠 측은 책임을 일정 부분 피하게 됐다. 당시 아파트 관리소 측이 스프링클러 시스템의 작동을 임의로 막은 것으로 드러나 아파트 측도 손해배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프링클러는 화재 발생 시 자동으로 작동해 초기 진화를 돕는 중요한 장비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관리소 직원이 이를 막아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서 불길이 급속히 번진 것으로 소방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놓고 차량 제조사, 차주 보험사, 아파트 관리소 간의 지리한 법적 공방이 장기간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전형환 변호사(법무법인 YK)는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묻기가 상당히 애매한 사건이다. 배터리 자체 결함이면 벤츠가 1차적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벤츠가 향후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업체(파라시스)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화재가 번진 것에 아파트 측도 소방시설 관리법 위반으로 민사상 손해 배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정으로 가면 입증책임을 두고 공방이 이뤄질 것인데 화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기에 당연히 어느 누구 하나 본인들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원칙적으로는 손해배상을 주장하는 쪽이 입증책임을 지는 게 맞는데 이번 사건은 화재 원인에 대한 책임을 묻기가 힘들기에 법원에서 입증책임을 어디까지, 누구에게 지게 할지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전기차 포비아에 국회 관련 입법 추진
해당 사건 전후에도 전기차 화재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전기차 포비아'(phobia·공포증)가 확산되며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기피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가 나섰다.

지난 12일 환경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는 금번 전기차 화재와 관련해 관계부처 긴급회의를 열고 지하주차장에 전력선통신(PLC) 모뎀 장착 완속충전기 확대 설치, 배터리 제조사 공개 여부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회의에서는 이번 화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과충전 방지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급속충전기는 PLC 모뎀이 장착돼 전기차 배터리 충전상태정보(SoC)를 차량 배터리관리시스템(BMS)에서 건네받아 충전기 자체적으로 과충전을 방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지하주차장에 스프링클러를 더 촘촘하게 설치하고 반응속도를 높여 안전성을 높이는 방안과 동시에, 지상 전기차 충전기를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정부는 이와 함께 배터리 제조사 공개 여부도 검토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오는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는데, 현재 국내에서는 차량의 크기와 무게, 최대 출력, 전비, 배터리 용량 등만 안내하고 있다.

이에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정부는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차량 제원 안내에 포함해 공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도 여야 가릴 것 없이 전기차 화재와 관련한 입법 논의에 착수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송언석·김상욱·구자근 의원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용갑·이훈기 의원등이 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이들이 내놓은 개정안은 주차장법 일부개정법률안,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으로 전기차 화재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목표 아래 큰 차이가 없다. 

송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차장법 개정안은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소방용수시설, 소화수조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소방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방시설법 개정안도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살수장치나 전기차 전용 소화기, 소화덮개 등을 설치하거나 비치하도록 하자는 내용이 담겼고,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도 전기자동차를 충전하기 위한 시설을 소유·관리 또는 점유하는 사람에게 보험 또는 공제 가입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들은 관련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나 행정안전위원회 등 소관 상임위로 회부됐다. 여야 이견이 없고,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안이기에 조만간 해당 상임위에서 치열한 논의가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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