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KFA)의 졸속행정과 겁주기식 대응에 축구인들도 못마땅한 모습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7일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KFA는 홍 감독 선임을 알린 뒤 다음 날인 8일 브리핑을 통해 홍 감독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 13일 그를 공식 선임했다.
특히 이 이사는 브리핑에서 포옛 전 감독과 와그너 전 감독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외국인 감독 2명이 최종후보에 있었다며 선임하지 않은 이유를 알리기도 했다. 그는 "'두 분의 축구 철학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맞춰나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한국 축구 선수들에게 맞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은 울산의 축구를 봐오지 않았냐. 빌드업에서 K리그 1위를 하고, 기회 창출에서도 1위였다. 모든 게 홍 감독이 맞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우리 선수들이 해오던 스타일을 끌어올려 3차 예선을 통과하는 것을 고려해야만 했다. 제 선택을 비난하셔도 좋다"고 덧붙였다.
이뿐 아니라 KFA가 내부 비밀을 폭로한 박주호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예고해 논란을 키웠다. 박주호 KFA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은 지난 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를 통해 "(홍 감독 내정을) 나는 정말 몰랐다"고 폭로했다.
이어 "5개월 동안 무엇을 했나 싶다. 허무하다. 저는 그만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허탈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국내 감독 선임 과정 배경도 드러냈다. 그는 "회의 시작도 전부터 '국내 감독이 낫지 않아' 하는 대화로 분위기가 형성됐다. 외국인 감독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내고, 국내 감독을 언급하면 무작정 좋다고 했다. 그중에는 본인이 임시 감독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홍 감독을 임명하자는 식으로 흘러갔다. 외부적으로는 외국인 감독을 원하는 것처럼 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고, 축구 팬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KFA는 박주호를 향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자 홍 감독과 함께 대표팀 생활을 한 동료들도 KFA를 향해 쓴소리를 냈다.
홍 감독 선임에 긍정적이었던 이천수는 지난 10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리춘수'에서 "축구계는 그야말로 '꼰대' 문화다. 축구인들이 못났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박)주호가 내부총질까지 했겠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지난 8일 KBS 뉴스와 인터뷰에서 "K리그 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결정이다. 이런 결정이 대표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상당히 의문이 든다"고 소신을 내비쳤다.
또 이 위원은 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우리가 포옛, 바그너, 홍명보 감독까지 세 분에게 의사를 묻고, 전력강화위원들과 소통을 한 후 발표를 했어야 한다. 그 과정이 생략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번 감독 선임 과정에서 협회가 여러 가지 행정적인 실수를 했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해버지(해외 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지성 역시 지난 12일 "한국에서 축구를 했고, 아직도 축구라는 분야에 있지만, '우리가 이거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아쉬움이 크고 마음이 상당히 아프다. 참담한 기분이다"라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동국도 KFA 비판 행렬에 가세했다. 이동국은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동방송국' 커뮤니티를 통해 "이번 국가대표 감독 이슈가 크다. 5개월이 넘는 시간을 지켜보며 참 아쉽단 생각을 했다. 지금의 이슈에서 한 단어가 머릿속을 강타한다. '법적대응'이다. 누구보다 노력을 한 사람한테 이런 단어는 아니다. 신뢰를 잃은 지금 누구의 탓이 아니라 모두가 본인의 탓이라 생각하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홍 감독은 "박 위원(박주호)의 말이 불편하게 들릴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도 이제는 허용해야 한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고 박주호를 감쌌다.
KFA는 내부자인 박주호의 입을 틀어막으려 '법적 대응'이라는 강수를 꺼냈지만, 오히려 직접 선임한 홍 감독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홍 감독과 같이 현역 시절을 함께 한 동료들까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