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원점으로 돌아간 GBC...명분도 실리도 다 놓쳤다

2024-07-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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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현대차 GBC 설계변경안 두고 실무협의
현대자동차그룹 본사인 GBC 타워가 들어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부지[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GBC) 타워 건립 논의가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100층 이상 높이를 주장하는 서울시와 그렇게는 지을 수 없다는 땅주인 현대차그룹의 주장이 창과 방패처럼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GBC 타워는 프로젝트 초기에만 해도 115층으로 설계됐다가 105층으로 계획을 수정한 뒤 다시 70층 높이 2개 동으로 바뀌었다. 가장 최근 논의된 건 55층짜리 3개 동 설계다. 2014년 9월 부지 매입 후 10번째 여름을 지나고 있지만 진척된 건 하나도 없다.
 
임직원만 7만3500여 명에 달하는 현대차그룹은 컨트롤타워와 재정파트, 각 사업팀, 미래산업추진단 등 업무별로 서울 양재동, 경기도 남양주, 의왕, 판교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전국 각지에 산재한 사업장과 60여 개에 달하는 계열사, 해외 지사를 일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컨트롤타워 건립이 그룹의 숙제인 건 당연하다. 그래서 전국 부지를 샅샅이 물색한 끝에 2014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7만4148㎡)를 선택했고, 당시 10조5500억원의 감정가를 써 삼성전자를 제치고 주인이 됐다. 감정가의 3배가 넘는 부지 매입 가격 탓에 현대차는 10년간 '승자의 저주'에 시달리며 주가가 내리막길을 걸었고, 컨트롤타워를 지으려던 정몽구 명예회장의 꿈은 '노욕'으로 비치기도 했다.
 
치를 대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엔 행정이 발목을 잡았다. 서울시는 현대차그룹이 당초 105층으로 착공 허가를 받은 만큼 랜드마크급이 아닌 건축물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6년 사측과 사전협상 당시 랜드마크를 지어주는 대신 공공기여를 줄여주기로 했는데, 설계를 변경하면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가 주장하는 '공공기여'는 공공의 선(善)이라 기업이 절대로 깰 수 없는 논리다. 

그러나 속살을 한 겹 더 벗기면 그 뒤에는 삼성동 주민과 강남구의 압박이 있다. 제2롯데월드(555m)를 제치고 국내 최고층 랜드마크가 될 GBC의 프리미엄은 지역민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동 GBC 타워 부지 곳곳에는 '105층 원안을 고수하라'는 현수막이 나붙어 있고, 일대 주민과 상인들은 "원안을 반드시 지키라"며 강남구청을 압박하고 있다. 대선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입장도 비슷하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설계 변경안을 철회하고 설계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쯤 되면 수요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건물을 이용하게 될 현대차 직원들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시민들에게 과연 초고층 마천루가 필요할 것인가. 건물이 50층 이상으로 높아지면 건축비가 기하급수로 상승하는 것은 물론 각종 화재와 지진, 강풍 등 재난에 취약하다. 좁고 긴 건물은 업무공간으로 활용하는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다. 이미 롯데타워를 이용하는 직원과 주민들은 엘리베이터를 여러 번 갈아 타야 하는 번거로움과 창문이 없는 건물의 환기, 화재 시 대피 위험 등에 불편을 호소한 바 있다.

그 공간을 함께 향유해야 하는 시민들은 어떨까. 초고층 빌딩보다 적당한 높이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가 소통 지향성, 시각적·정서적 안정감, 활용 측면에서도 좋다. 초고층 설계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는 모두 외산이다.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해외 기업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은 국부 유출 측면에서도 바람직 하지 않다. 
 
GBC 타워에는 복잡한 인간의 욕망이 총망라됐다. 부지 매입비만 11조원에 달하는 데다 서울·경기 지역 부동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포함한 교통 문제, 랜드마크 빌딩이라는 상징성, 인근 땅값을 둘러싼 지역민과 투자자 등의 이익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 정작 있어야 할 시민의 복리(福利)는 없다. 10년째 매일 출퇴근 길마다 교통 지옥을 겪는 시민들, 공사 먼지와 매캐한 매연을 맡으며 일하는 일대 근로자들, 회의를 하기 위해 매일 먼 거리를 오가는 현대차 임직원들의 고통 분담에 대한 계산은 빠졌다. '공공기여'와 '기업의 실리추구'라는 거대한 두 가치의 충돌 속에 정작 시민과 직원의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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