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에서 폐기됐던 '채 상병 특검법'이 거대 야당의 추진 강행으로 폐기 37일 만에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여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통해 '지연 작전'을 펼쳤으나, 거대 야권의 특검법 강행을 막을 수 없었다. 아울러 민생 점검을 위해 예정됐던 대정부질문은 특검법 강행과 여야 간 신경전으로 사흘 내내 파행하고, 예정된 국회개원식도 당정 불참으로 연기됐다.
국회는 4일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상태에서 야당 단독으로 채 상병 특검법을 의결했다. 여당 의원들은 소수당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민주당에서 필리버스터를 조기 종료시키기 위해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서'를 제출했지만, 국민의힘은 "아직 발언 중이기에 계속할 수 있다"며 필리버스터를 이어나갔다.
이날 오전부터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곽 의원은 채상병 특검법의 위헌성을 조목조목 따졌다.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서가 제출된 지 24간이 지난 이날 오후 3시 48분께, 우원식 국회의장이 토론 종결을 시도했다.
이같은 지연 작전도 결국 끝을 맞이했다. 우 의장이 곽 의원의 발언을 지켜본 후 필리버스터를 중지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장석으로 뛰쳐나와 "토론 중에 종결하는 게 어디있냐"며 항의했으나, 우 의장은 "의장이 의사를 정리할 권한이 있다"며 중지 표결에 들어갔다.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 요건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300석 중 175석) 찬성인데, 곽 의원 발언을 강제 중지한 우 의장 판단에 반발한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결국 필리버스터는 종료됐고, 국회는 채 상병 특검법 표결에 들어갔다.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거대 야당(192석)은 채 상병 특검법도 의결했고, 특검법 역시 여당 의원 중 안철수(찬성)·김재섭(반대) 의원만 표결에 참여한 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정부·여당이 "수사기관 수사를 지켜보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의요구권 행사는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가능하다.
특검법이 정부로 이송되면 야권의 대여 공세는 한층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19일이 채 상병 사망 1주기인 만큼 야권은 거부권 행사 규탄을 시작으로 장외 집회 등도 불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로 다시 돌아오면 국회는 재표결에 들어간다. 재표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8석만 나와도 통과된다.
채 상병 특검법으로 인해 국회가 해야 할 민생 현안 파악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도 있다. 대정부질문을 위해 잡힌 국회 본회의가 쟁점 법안 상정으로 인해 여야 간 갈등이 폭발하며 사상 초유로 사흘 연속 파행했기 때문이다. △정치 △외교 △통일 △안보 △경제△교육 △사회 △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준비했던 국무위원 중 중 일부는 아예 시작도 못해 보고 퇴장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같은 거대 야당의 독주로 여야의 분위기는 더욱 냉각됐다. 추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및 사법테러 규탄대회'를 열고 "법치를 흔들고 (우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 없는 일방적인 의사 일정으로 국회를 파탄시키는 현실에서 국회 개원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국민의힘은 개원식 불참을 공식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말아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이에 따라 오는 5일 예정된 국회 개원식이 연기됐다. 국회의장실은 직후 "내일 예정이던 22대 국회 개원식이 연기됐다. 개원식 일정은 추후 확정 고지하겠다"고 공지했다.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사례는 1987년 이후 한 번도 없다. 특히 여당이 국회 개원식에 참여하지 않은 사례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