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세계 최대 배터리업체' CATL, '896 근무제' 돌입…왜?

2024-07-04 06:00
  • 글자크기 설정

엔지니어들 전부 강제적 초과근무 

경쟁 심화로 中 '독점' 체제 막내려 

배터리 경쟁력 향상에 중점...브랜딩 나서기도

CATL
CATL 직원 노트북 배경 화면에 '100일 분투' 문구가 쓰여있다. [사진=웨이보]



“996, 896, 007”
 
IT(정보통신) 산업이 초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화웨이·샤오미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IT 기업에서 탄생한 일종의 근무 문화를 상징하는 숫자들이다. ‘996’은 오전 9시 출근·오후 9시 퇴근·주 6일 근무, ‘896’은 오전 8시 출근·오후 9시 퇴근·주 6일 근무를 뜻한다. ‘007’은 이보다 강도가 훨씬 높은 초과 근무를 가리키는 말로, 자정(0시)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 24시간 주 7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CATL이 ‘896 근무제’를 꺼내 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CATL 직원들이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896 근무제 관련 내부 지침에는 “100일 동안 분투하라”는 문구와 함께 “조직이 부여한 업무를 더 잘 완수하고 각 프로젝트 달성 속도를 높이기 위해 오늘부터 100일 동안 분투할 것을 호소한다”는 사측 입장이 나와 있다.  

쩡위친 CATL 회장 겸 CEO(최고경영자)는 지난달 25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100일 분투’는 단지 기본적인 태도를 몸에 익히라는 뜻”이라면서 “강제성은 없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들 전부 '강제적 초과 근무' 
하지만 직원들에 따르면 CATL은 지난달 12일부터 896 근무제에 돌입한 상태다. 사내 IT 센터가 관리하는 노트북 배경 화면도 이날부터 ‘100일 분투’ 포스터로 바뀌었다. 강제성은 없다는 쩡 회장의 말과는 달리,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야 할 경우 반드시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는 등 강제적으로 초과 근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896근무제는 7급 이상 직원들에게만 적용되는데, 이는 엔지니어 직급이다. 엔지니어들은 CATL 입사 시 학부 졸업생과 석사, 박사로 나뉘어 각각 7급, 8급, 9급의 직급을 부여받는다. 즉 엔지니어들은 전부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초과근무 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중국 언론들은 이는 명백한 노동법 위반이라고 꼬집고 나섰다. 중화인민공화국 노동법 제36조에 따르면 근로자의 1일 근로 시간은 8시간을 초과하면 안 되고,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44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 경영주가 필요에 따라 근로자와 협의 후 근로 시간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연장 근로 시간은 1일 3시간, 월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IT 전문매체 36kr은 “896 근무제에 따라 근무한다면 CATL 엔지니어들은 주당 28~33시간씩 초과근무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쟁 심화로 中 '독점' 체제 막 내려 
CATL이 896 근무제까지 선언하며 재정비에 나선 배경은 뭘까. 지난해 CATL의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37%로, 7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CATL은 중국 업체들은 물론이고, 테슬라·폭스바겐·도요타 등 거의 모든 주요 완성차 제조사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지난해에는 4009억 위안(약 76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2020년 매출의 약 8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직원 수는 2019년 2만6800명에서 2022년에는 11만8900명까지 늘었다. 

이처럼 CATL은 탄탄한 중국 정부의 지원과 팽창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등에 업고 성장 가도를 달려왔다. 특히 중국 내 영향력이 막강했다. CATL 배터리를 구매하기 위해 업체들은 사전에 보증금까지 지불해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 내 배터리 품질이 차츰 상향 평준화되면서 CATL을 대체할 만한 배터리 기업들이 생겨난 데다, 전기차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배터리 생산력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CATL의 독주 체제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CATL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43%로, 여전히 압도적 수준을 유지했으나 점유율이 전년 대비 5%포인트나 하락했다. 반면 BYD 점유율은 27%로 4%포인트가량 상승했다. BYD뿐만 아니라 지리자동차, 광저우자동차 등 여러 완성차업체도 자사 전기차에 자체 개발 배터리를 탑재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지리자동차는 2019년부터 배터리 사업에 총 1300억 위안을 투자했다. 지난달 말에는 자체 개발·제조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출시한 바 있다. 

특히 최근엔 중국 내 배터리 공급 과잉과 전기차 기업의 가격 인하 경쟁 등이 맞물리면서 CATL은 재고 압박 및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올해 1분기 CATL 매출은 797억7000만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41%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감소세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105억1000만 위안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 역시 전년 동기 대비 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순이익 성장률은 무려 558%에 달했다. 더욱이 지난 2일에는 주문 감소로 한 공장의 생산라인 4개 중 2개가 가동을 중단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배터리 경쟁력 향상에 중점...브랜딩 나서기도
이러한 상황에서 CATL은 향후 경쟁력 향상에 중점을 둔다는 전략이다. 앞서 쩡 회장은 “일회성 가격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기술력과 안전성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가치 경쟁이 가격 경쟁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CATL은 하반기 중 10분 만에 완충이 가능한 초고속 충전 배터리를 발표할 계획이다. 업계는 CATL이 이를 위해 LFP와 삼원계(NCM·니켈코발트망간) 소재를 혼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행거리가 짧지만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와, 에너지 밀도가 높고 충전 시간도 단축할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싼 삼원계 배터리의 장단점을 상호 보완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충전 효율이 높을수록 배터리에서 더 많은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냉각 시스템이 중요한데, 배터리 셀 아래에 냉각 시스템이 있는 기존 배터리와 달리 CATL의 냉각시스템은 셀 사이에 있어 훨씬 효율적이다. CATL은 초고속 충전 배터리 개발을 위해 테슬라와도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은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술 및 비용 문제로 인해 수년간 이론적 단계에 머물던 전고체 배터리는 올해 들어 배터리 업계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했다. 지난 4월 CATL은 전고체 배터리의 양산계획을 공개하며 우선 2027년 소량 생산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리튬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데,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 물질로 대체한다. 발화나 폭발 위험이 없어 안전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아 주행거리가 길다. 급속 충전 능력도 우수해 꿈의 배터리로 불리지만, 현재 기술로는 제조 비용이 높아 양산이 어렵다. 

아울러 CATL은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통해 이르면 2027년 8톤급의 전기 항공기가 최대 3000㎞를 비행할 수 있는 배터리도 내놓을 계획이다. 이미 자사 배터리를 탑재한 4톤급 전기 항공기 시험 비행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단일 에너지 밀도는 전기차의 두 배에 달한다. 하지만 충전에는 단 몇분 밖에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CATL의 설명이다.

오는 8월에는 쓰촨성 청두에 '신에너지 라이프 플라자'라는 이름으로 첫 오프라인 브랜드 전시 매장도 오픈할 계획이다. 총 1만5000㎡ 면적의 매장에는 CATL 배터리를 탑재한 이른바 'CATL 인사이드' 전기차가 전시된다. 20여 곳의 전기차 기업에서 내놓은 총 50여 종의 모델이 들어설 예정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게 목적이다. 이를 통해 CATL 배터리를 탑재한 차가 더 잘 팔리도록 해 자동차 업체들이 CATL 배터리를 계속 구매할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 인텔이 자사 중앙처리장치(CPU)를 채택한 PC가 우수하다는, 이른바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을 펼쳤던 것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사진AFP연합뉴스
쩡위친 CATL 회장 겸 CEO가 지난달 27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