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여파로 역전세 등 임대차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자 정부가 '전세 제도 폐지'를 들고 나왔다. 게다가 유명 유튜버가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집을 또 다른 세입자에게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를 시도했다는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전세사기에 대한 두려움이 청년층 사이에 퍼지고 있다. 반세기 가까이 유지돼오며 ‘서민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 온 전세제도의 폐지는 과연 가능할까.
전세제도, 언제부터 시작됐나…1970년대가 '시초'
전문가들은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전세제도가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주택을 매입하는 대신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담보로 제공하고 일정 기간 거주할 권리를 보장받는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산업화가 시작되던 1970년대 중반부터 집주인이 월세 대신 보증금 형태로 목돈을 받는 전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본격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 들어왔고 이는 곧 주택 수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세제도는 그간 한국사회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세입자는 집값의 40~50% 수준의 돈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나중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고, 집주인은 월세 대신 목돈을 한번에 받아 자산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정부가 전세제도 폐지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우리 전세 제도가 이제는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본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원 전 장관은 전세 제도 개편에 대해 "최종 판단은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반영해서 내려야 한다"며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최근 박상우 국토부 장관도 전세 제도의 수명이 다했다는 데 공감하면서 "가격 하락과 맞물리면 고의적이든 비고의적인 사기든 발생할 수 있다. (전세는)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전세사기로부터 안전한 전세 계약 체결하는 방법은?
전세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데에는 작년부터 이어지는 전세사기 영향이 크다. 국토부는 지난달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총 1065건에 대해 전세사기 피해자 등으로 최종 가결했다. 이로써 정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등으로 인정받은 건은 총 1만8125건이 됐다.
전세보증사고 규모는 증가하는 추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사고액은 1조9062억원, 사고 건수는 8786건이다. 월별로는 1월 2927억원, 2월 6489억원, 3월 4938억원, 4월 4708억원이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1조830억원)보다 76%(8232억원) 증가한 수치다.
전세사기와 역전세 여파로 올해 연간 사고액은 역대 최고치였던 작년 규모(4조3347억원)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사기로부터 안전하게 전세 계약을 맺기 위한 첫걸음으로는 전입신고가 꼽힌다. 주택임대보호법에 따르면 전입신고를 하게 되면 제삼자에 대해 대항력이 생긴다.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대항력을 갖추기 위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게 되면 설령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전세 가격의 50% 정도는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 형태의 계약도 전세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진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감정평가사의 감정평가를 받고 감정평가 금액의 50% 정도 캡을 씌워서 그 이상 전세 계약을 하지 못하게 막아놓는 등의 제도적 보안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는 향후 비(非) 아파트에 대한 시장 가격 투명화가 전세 제도의 보완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고 교수는 "아파트의 경우 옆집의 전세가격이 얼마인지, 매매가격이 얼마인지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비아파트는 그게 되지 않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 된다"며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90%인지 100%인지 모르고 계약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