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는 18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에서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우리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초 5.0%에서 올해 5월 2.7%로 낮아졌지만 국민들께서 피부로 잘 느끼시지 못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한은이 같은 날 발표한 'BOK 이슈노트-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은 이 총재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 한국의 물가수준을 주요국과 비교해보면 전체 물가수준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평균 정도이지만 의식주 비용은 더 높고 공공요금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식료품 물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식료품 물가는 OECD 평균(100%)보다 56% 비쌌다. 의류와 신발은 61%, 주거비도 23% 높았다. 반면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36% 낮았다. 대중교통 등을 포함한 공공요금은 27% 낮았다.
한은은 이런 기현상의 원인이 △낮은 생산성·개방도(과일) △거래비용(농산물, 의류) △정책지원(공공요금)이라고 제언했다. 농산물을 수입해 공급채널을 다양화하고 공공서비스 공급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공공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인구당 경작지 면적(0.3헥타르/명)이 매우 작고 영농규모도 영세해 노동생산성이 OECD국가중 하위권(27위)에 속한다. 그나마 유지하던 과일‧채소 생산량은 농가 고령화에 이상기후로 작황이 부진하게 되면서 2010년대 이후 크게 줄었다.
농가판매가격의 누적 상승률이 소비자가격 대비 낮은 이유로는 도·소매업체의 시장지배력이 큰 게 문제점으로 꼽혔다. 농산물 유통비용률(유통비용/소비자가격)은 1999년 39%에서 2022년에는 50% 수준으로 높아졌다.
한은 조사국은 "향후 고령화로 재정여력은 줄어드는 반면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차질은 생활비 부담을 계속 증대시킬 가능성이 큰 만큼 생산성 제고, 공급채널 다양화 등과 같은 구조적 측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생산비용 대비 낮은 공공요금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공공서비스 질 저하, 에너지 과다소비 및 역진성, 세대 간 불평등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친환경 에너지 전환으로 생산비용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공공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한은 주장대로 구조 개선이 이뤄져 우리나라의 식료품·의류가격이 OECD평균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가계의 소비여력은 평균 약 7%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해당 품목에 대한 지출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여력은 더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한은 조사국은 "공공요금이 OECD평균 수준으로 높아진다고 가정할 경우 소비여력이 약 3% 정도 줄어들 수 있으며 공공서비스 지출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에서 더 줄어들 수 있다"며 "단계적 정상화 노력과 함께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