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약·교제폭력' 피의자 불구속 활보…여성 가택침입·폭행 무방비 노출

2024-06-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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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성, 스토킹 처벌법 위반·폭행·주거침입 혐의로 피소

지난해 3월 이별통보 듣자 가위 들이밀고 살해 협박

불구속 이후 경찰 안전조치에도 버젓이 연락...피해자 '공포'

피해자 "나만 괴로워야 하나"...변호인 "재범 위험 고려해 구속돼야"

교제폭력 사진A씨
지난해 11월 1일 새벽 A씨(30)가 집에 무단 침입한 교제폭력 피의자를 "나가서 이야기 하자"며 설득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고 있는 모습. A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A씨 제공]

마약 상습 투약 혐의까지 받는 교제폭력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로 활보하면서 피해 여성이 가택 침입과 폭행 등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18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A씨(30)는 전날 강동경찰서에 전 연인 B씨(44)에 대해 스토킹 처벌법 위반·폭행·주거침입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지난해 11월 1일 새벽 2시경 초인종 소리에 A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과 몇 달 전 "헤어지자"는 말에 흉기를 목에 들이댔던 전 남자친구였다. 문을 열어주지 않자 B씨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풀고 들이닥쳤다.

"전화 받으면 되잖아, 왜 씹냐" "비밀번호도 다 알아냈잖아"라며 시작된 폭행이 주거지 밖에서도 이어졌다. A씨는 “무서우니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는데, 공원에서도 주먹으로 몸을 때리고 온갖 무서운 말도 쏟아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너 이 자리에서 죽어.”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린다.” “서울에서 못살게 해주겠다.” A씨가 떠올린 협박이다.

소란에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면서 상황은 겨우 일단락됐다. 경찰이 A씨에게 조사를 받겠냐고 했으나 거절했다. A씨는 “또 신고하면 보복할까 봐 무서워서 엄두도 못 냈다”며 “신고하면 또 엮일까 봐 겁났다. 그냥 이대로 다 제발 끝나길 바랐다”고 얘기했다. 약 8개월 동안 집요한 연락에 시달렸음에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 것이다.

 
고소장 [사진=법무법인 현암]
A씨(30)는 지난 17일 강동경찰서에 전 연인 B씨(44)에 대해 스토킹 처벌법 위반·폭행·주거침입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진=법무법인 현암]

 
문제는 B씨가 앞서 지난 3월에 A씨를 살해 협박한 것은 물론 마약 상습 투약 혐의까지 더해져 구속영장이 청구됐음에도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A씨가 지속적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3월 16일 A씨는 동거 중이던 B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계속된 폭언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B씨는 주방에서 가위를 꺼내 침대에 누워 있던 A씨 목에 들이댔다. “내가 전 여친도 칼로 한번 벤 적 있어. 못할 것 같지”라는 협박에 A씨는 울면서 미안하다고 빌었다.
 
A씨는 “목에 가위를 들이대던 그 눈빛은 살인할 눈빛이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당시 느낀 위협으로 지금도 계속 신경안정제 없이 잠 못 잘 정도다.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고 과다 복용할 때도 있다”고 했다. 밤새 연락이 끊기자 다음날 찾아온 A씨 부모가 옷방 구석에서 웅크려 잠든 A씨를 발견했다. B씨는 짐을 싸는 척 A씨 명품 가방까지 몰래 챙겨 집을 나갔다.
 
A씨는 다음날인 17일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평소 의심하고 있었던 마약 정황도 함께 신고했다. A씨는 마약 음성이 나왔다. 강동경찰서는 특수협박·절도·마약 혐의로 사건을 서울동부지검에 송치했다. 같은 달 30일 B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서울동부지법 홍기찬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기각됐다.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A씨가 교제폭력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차 번호판도 변경했다 사진A씨 제공
A씨가 교제폭력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차 번호판도 변경했다. [사진=A씨 제공]


경찰은 A씨를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으로 보고 3월 17일부터 7월 15일까지 4개월 동안 스마트워치까지 지급했으며 4월 6일부터 7월 15일까지 자택 앞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다만 가정폭력 처벌법이나 스토킹 처벌법에 해당되지 않아 접근금지 조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B씨는 유치장에서 며칠 만에 풀려난 후 거리낌없이 A씨 집을 찾았다. 편지를 놓고 가기도 하고, 차에 잠복하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매일 차를 확인하는 B씨를 피하기 위해 차 번호판까지 바꿨다. 같은 해 6월 다시 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처벌불원서까지 제출했지만, 변한 건 없었다. 직장까지 전화해서 A씨 연락처를 캐묻고, 가택에 침입하기까지 했다. 

A씨가 다시 용기를 낸 건 B씨가 재판에 넘겨지면서다. B씨의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특수 협박 혐의 사건은 서울동부지법 형사8단독(이준석 판사)에 배당돼 오는 8월 첫 재판이 열린다. A씨는 “구공판은 검찰이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생각해서 열리는 재판이라고 들었다”며 “가해자는 잘먹고 잘살 텐데 왜 나만 정신과 다니고 침대에서도 편하게 못 자면서 힘들어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소장에는 "피의자의 이러한 행위들은 명백히 고소인 의사에 반하는 일이며 고소인은 불안과 공포감에 떨고 있다"고 했다. A씨는 경찰 측에서 "마약을 하고, 가위로 동맥을 찌르려고 했던 사람인데 풀려나서 불안하다"고 호소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A씨를 대리하는 최우석 법무법인 현암 변호사는 "남녀 간 교제폭력이나 스토킹 행위는 단 1회라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인신 구속을 우선적으로 해서 사건을 진행해야 추후 비극적인 결말을 막을 수 있다"며 "첫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되더라도 두 번째 (범죄를) 했을 때는 재범 위험이 크기 때문에 구속영장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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