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확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시장 반응이 신통찮다. 선제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관련 공시를 낸 사례는 단 2곳에 불과하고 내겠다고 예고한 기업을 모두 더해도 4곳에 불과하다.
16일 한국거래소 공시채널 카인드(KIND)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기업 DB하이텍이 3분기 중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겠다며 밸류업 대열에 합류했다. 5월 말 KB금융, 키움증권, 에프앤가이드 등에 이어 네 번째로 나온 밸류업 공시다.
최종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정부 목소리에 호응하는 기업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7일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직접 언급해 공식화했다. 정부는 이후 5개월 내내 기업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전개해 성장하고 그 과실을 투자자와 함께 향유하며 재투자하는 자본시장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기업 참여가 저조한 이유는 경영상 부담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참여 기업은 가이드라인과 해설서를 바탕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작성하면서 물적‧인적 자본 투자, 사업구조 개편, 주주환원 확대 등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 상황별 다양한 계획을 세워 매년 제시해야 한다. 전년 계획 대비 이행 결과도 공개해야 한다. 재무적·비재무적 현황, 중장기 사업 방향, 경영 판단과 기업 전략 노출을 감수해야 한다.
경영진은 경영 판단 노출 자체를 꺼린다. 제22대 국회에서 '경영진(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재계에선 지배 주주와 일반 주주 간 이해 충돌로 경영진 대상 소송이 남발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경영판단원칙' 제도화를 통해 합리적 경영 판단에 민형사적 책임을 면제해 기업 우려를 덜 수 있다고 봤다.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계획은 시장 참여자의 투자 판단을 돕고 투자자의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으나 참여 기업에 돌아갈 실익은 거의 없다. 기업 법인세·상속세 감면 등 세제 지원이 언급됐지만 이는 법 개정 전까지 확정된 게 아니다. 참여 기업 사례를 보면 주가 부양 효과도 크지 않다. 공시를 낸 KB금융, 키움증권, 에프앤가이드 주가는 연초 대비 대폭 올랐지만 이는 금융 업종 전반에 걸친 현상이다.
하지만 증권가는 하반기부터 밸류업 참여에 대해 기업 인식과 움직임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KB증권은 "정부 정책 의지가 강하고 기업 참여도 조금씩 늘고 있으며 법안 개정에 대해 일부 변화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중장기 선호주로 금융·자동차 업종을 지목했다.
하이투자증권도 "기업가치 제고 계획 수립에 이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불가피해 계획 신뢰성과 이행력이 강화될 것"이라며 "지주(삼성물산·SK·LG·LS·CJ·두산 등), 금융지주(KB금융·하나금융지주·신한지주 등), 보험(삼성생명·삼성화재 등), 정부 소유 유틸리티(지역난방공사·한국가스공사·한국전력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NH투자증권은 "중소형주는 이러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통해 회사 비전, 전략, 재무 성과 등을 시장에 투명하게 전달하면 투자자 관심을 더 많이 끌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저평가 업종 중 시니어케어 서비스 확산이 기대되는 보험 업종, 일반 기업의 인공지능(AI) 적용을 돕는 통신 업종, 구조조정되는 가운데 신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는 화학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