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전문가 "주주 충실의무 도입 시급" vs 상장사 "경영 위축 불가피"

2024-06-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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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 놓고 증권업계ㆍ학계와 기업간 의견 정면 충돌

김우진 서울대 교수가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우진 서울대 교수가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상장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놓고 학계와 재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학계에서는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 반면, 상장사 측에서는 반기업적 규제라고 날을 세웠다.
 
주제 발표 핵심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범 '후진적 지배구조'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상법 개정과 관련한 이 같은 시각차가 극명히 드러났다.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를 포함해 나현승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
 
김우진 교수는 국내 상장기업 거버넌스의 핵심 문제는 주주간 이해충돌 및 부의 이전 등 회사법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주로 공정거래법으로 이를 규율해 온 데 따른 한계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소유집중 기업의 핵심 거버넌스 이슈는 하버드 법대의 벱척 교수가 지적했듯이 지배주주 일가가 해당 상장기업에 대한 지분과는 별도로 외부에 개인회사 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러한 자기 거래를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규제 및 사익편취 방지 제도를 통해 규율해 왔지만 기업들의 '정당한' 규제 회피를 통해 한계점이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요 20개국(G20)·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거버넌스(지배구조) 기준에서도 내부거래 규율의 원칙은 경제력 집중이 아니라 이해충돌 방지가 핵심"이라며 "상법 개정을 통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간 이해가 충돌하는 자기 거래 상황에서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완전한 공정성(entire fairness)을 요구하자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나현승 교수도 일반 주주의 권익보호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을 전달했다. 나 교수는 "국내 기업이 갖는 대리인문제의 핵심은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의 이해상충"이라며 "지배주주가 보유한 지분이 적음에도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모든 계열사에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등 사익을 추구하고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수주주의 이익 침해로 인한 가치 저하를 반영, 시장의 주식가치 저평가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핵심적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황현영 연구위원은 개인 투자자들의 주주총회 접근성을 높여 주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 업무 집행을 하도록 이사 선임에 대한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사의 충실의무는 이사와 회사의 이해상충 관계에서 시작된 법리이지만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일반주주)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해 논의를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개인 주주들의 주주총회 참석률 제고와 기관투자자들의 충실한 의결권 행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전자문서, 증권사 앱 공지 등으로도 주주총회 알림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전자투표, 전자주총 참여 링크가 알림에 포함되면 소액주주들의 주주총회 참석률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장사 "이사 충실의무 기업가치 제고 도움 안 돼"
주제 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 기업과 학계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상장사 측은 이사 충실의무가 도입될 경우 경영 부담이 한 층 가중되기만 하고 기업 가치 제고에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상법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기업 이나 경영진 측에서 굉장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우리 상법은 회사와 이사와의 관계를 선관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고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충실이 하도록 하고 있다"고 주제 발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진성훈 코스닥협회 연구정책그룹장은 코스닥시장의 개인 투자자 비중이 90%를 넘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기업 밸류에이션을 개선하는 데 있어 이사 충실 의무 도입이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발언했다.
 
진 그룹장은 "코스닥 중소기업들의 목표는 지속이라고 하는 개념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연구개발(R&D) 투자라든가 공장, 기술에 대한 재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부분들이 오히려 기업 가치 제고에도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교수님들께서는 주식 소각이라고 하는 게 기업 가치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지만 정말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고 부연했다.
 
증권업계·학계 "지배구조 개선 이번이 마지막 기회" 호소
이와 관련해 증권업계와 학계에서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라도 이사 충실 의무 도입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변준호 안다자산운용 대표는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사례를 예로 들며 일반 주주의 권익 침해를 막는 제도라면 도입이 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내놨다.
 
변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어떻게 보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 있을 것 같다"며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은 그 나라의 국격하고 연결이 된다. 여기 계신 분들이 지치지 마시고 더 힘내서 한국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노력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간곡히 호소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도 "지난 20년 동안 우리 법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인 취약한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며 "이사에게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할 의무를 명시하는 것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첫 단추"라고 힘주어 말했다.
 
학계에서 토론 패널로 참석한 김중혁 고려대 교수는 "주주의 권한 강화와 권익 보호를 위한 장치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반주주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중요하다"며 "주주중심 거버넌스로의 전환을 포함해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투자분위기와 문화조성이 병행되어야 제도 개선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발언에 나선 정은정 금융감독원 법무실 국장도 물적분할 후 모자(母子) 회사 동시 상장 등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일련의 사례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국장은 "그간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제도 마련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쪼개기 상장 등 이사 및 지배주주의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열악한 기업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과 더불어 이사의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경영 판단원칙의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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