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직원들에겐 틀에 얽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똑똑한 이단아'가 되어 한은의 혁신을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잘못된 길이 아니냐는 웅성거림이 있을지라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고통과 논란은 실력으로 이겨내자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12일 한국은행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통화정책의 성공적 수행 외에도 한국은행이 앞으로 마무리해야 할 사업이 많다"고 말했다. 한은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2년 뒤인 1950년 6월12일 설립됐다. 이 총재의 임기는 2022년 4월에 시작했다.
이번 기념사에는 임기 후반기인 만큼 전반기에 뿌려온 씨앗들을 점검하며 결실로 굳혀가자는 당부의 발언들로 채워졌다. 우선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금리 수준 향방 선제적 안내) 시계열 확대에 앞서 "계획했던 대로 8월부터 반기에서 분기 단위로 세분화된 경제전망을 발표해 분석능력을 제고하고 시장과의 소통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한은은 이 총재 취임 후 2022년 10월부터 한국형 점도표를 도입해 실험 중이며 최근에는 시계를 6개월, 1년 등으로 확장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 총재는 "현재 금통위원의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전망에 대한 견해를 공개하고 있는데 위원들과 함께 이런 방식의 효과 및 장단점 등에 대해 검토하고 개선방안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단기금융시장에서 거래량이 현저히 줄어들어 더 이상 지표금리로서 대표성이 없음에도 여전히 CD금리가 관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이를 대신해 실거래 기반의 무위험지표금리(KOFR)를 준거로 하는 금융상품 거래를 장려하여 통화정책 파급경로의 유효성을 제고하고 관련 파생상품시장의 활성화에도 힘을 보태겠다"고도 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유동성 안전판 강화를 위해 한국은행 대출 적격담보 범위를 대출채권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은행 및 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 대한 체계적이고 예측가능한 유동성 지원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며 한은법 개정 필요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현 시기를 인플레이션과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이라고 칭했다. 그는 1분기 국내총생산(GDP) '깜짝 성장'을 언급하며 "이런 성장지표 뒤에는 수출과 내수의 회복세 차이가 완연하고 내수 부문별로도 체감 온도가 상이하다"고 꼬집었다. 물가상승률 관련해서도 "예상보다 양호한 성장세,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에 따른 환율 변동성 확대로 물가의 상방 위험이 커진 데다가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빅스텝으로 인상하던 때의 거친 풍랑은 이제 어느 정도 잦아들었지만 지금은 수면 아래 곳곳의 보이지 않는 암초를 피해 항로를 더욱 미세하게 조정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 시기"라면서 "이런 때일수록 각국 중앙은행의 실력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어 "겸손한 자세로 경제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다양한 시나리오별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정교하게 정책을 운용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에겐 취임 때부터 강조해 온 '한은사'에서 벗어나 '시끄러운 한은'으로 거듭나자고 다시 한번 격려했다. 한은은 최근 외국인 돌봄 관련 최저임금 차등보고서 등을 공론화 시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런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 제언하는 역할을 계속 해나가자고 했다.
이 총재는 '누가 보상(credit)을 받을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격언을 언급하며 "논쟁과 비난을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한다면 늘 그 자리에 머물 뿐 발전적 변화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착화된 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는 집단별 이해관계가 첨예하여 서로 대립하기 마련"이라면서 "법적 권한이 없는 한국은행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어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권한이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한국은행이 더 중립적으로 분석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면서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책임감으로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 제언하는 역할을 계속해 나가야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