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으로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전환 목표도 지연되면서 배터리 업계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테슬라, 포드,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박리다매' 전략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배터리 3사 실적도 추락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4월 전 세계 배터리 출하량은 58.5GWh로 전월 대비 11.5% 감소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지속되는 고금리 기조와 비싼 전기차 가격, 신모델 출시 지연, 충전 인프라 부족이 전기차 후방산업인 배터리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별로 보면 중국의 CATL(21.3GWh)과 BYD(10.5GWh)가 선두권을 형성한 반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업체들은 각각 6.7GWh, 2.8GWh, 2.6GWh를 기록하며 3~5위에 머물렀다. 국내 배터리 3사 출하량 합계가 CATL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다.
'K-배터리' 부진은 올 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1분기 영업이익 1573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75.2% 감소했다. 미국 IRA 첨단 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제도에 따른 세제 혜택은 1889억원으로, 이를 제외하면 316억원 적자인 셈이다. 삼성SDI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28.8% 줄어든 2673억원에 그쳤다. SK온은 전년보다 적자 폭이 줄었지만 여전히 3000억원 넘는 적자를 냈다. SK온은 이번 분기까지 9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국내외 사업장 가동률도 급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1분기 가동률은 57.4%로 지난해 1분기(77.7%)보다 2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같은 기간 SK온도 26.6%포인트 줄어든 69.5%에 그쳤다.
문제는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사업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포드는 LG에너지솔루션과 튀르키예에서 추진하던 배터리 합작법인 사업을 철회했고, 120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투자 계획도 연기했다. SK온과 추진하던 배터리 합작법인 블루오벌SK 제2공장 가동 일정도 기존 2025년에서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크빌 공장에서 양산할 예정인 3열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출시 시기도 2025년에서 2027년으로 2년 늦추기로 했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4월 실적 발표에서 올해 투자비 감축을 공식화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중장기 수요 대응이나 북미 선제적 생산능력(CAPA)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신증설 투자는 선택과 집중으로 지속하나 투자 우선순위를 철저히 따지고 능동적인 투자 규모와 집행 속도를 조절하면서 시설투자(CAPEX) 집행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업황 부진을 타개할 전략으로 '가격 경쟁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캐즘' 이후 시대를 대비한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배터리 업계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개발에 한창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전고체 배터리가 현재의 업황 부진을 타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가 생산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데다 고가에 거래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력에 있어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