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32년 전 한국의 배신과 'TSMC와 AI' 대만의 도약

2024-06-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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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엔비디아(NVIDIA)를 대만 사람들은 후이다(輝達)라고 부른다. 음역을 한 것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황런쉰(黃仁勳)’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부른다. 황런쉰은 15일간의 대만 방문을 끝내고, 8일 밤 8시 31분 캐나다 봄바디 에어로 스페이스가 제작한 개인 전용기 편으로 타이베이(臺北) 쑹산(松山) 비행장을 떠났다. “올해 안으로 또 오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대만 미디어에 따르면, 대만을 방문한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5월 29일 타이베이 북쪽의 오마카세 일식당에서 대만 과학기술업계 인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만찬은 3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황 CEO 부부와 모리스 창(장중머우 · 張忠謀) TSMC 창업자 부부가 참석했다. 이들은 만찬을 마치고 황 CEO 제안으로 타이베이 8대 야시장 가운데 하나인 닝샤(寧夏) 야시장을 방문해 대만식 굴전 등 야식을 즐겼다. 오랜 미국 생활 끝에 귀국해서 TSMC를 창업한 모리스 창의 부인은 “90대인 남편의 야시장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만 사람들이 타이지디엔(臺積電)이라고 부르는 TSMC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독점 생산하고 있다.
“…대만은 이미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들어섰습니다. 미래 세계를 전망해 보면,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고, AI의 파도가 밀려올 것입니다. 현재 대만은 선진 반도체 생산공정을 장악해서 AI 혁명의 중심에 섰습니다. 대만은 전 세계 민주국가 산업 공급망의 중요한 고리로, 세계 경제의 발전과 인류 생활에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주게 될 것입니다. …”
지난달 20일 대만 제16대 총통으로 취임한 라이칭더(賴淸德)는 취임사에서 대만을 ‘반도체와 AI의 나라’의 중심에 세우겠다고 대만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라이칭더 총통은 4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에 참석해서는 "슈퍼컴퓨터를 대만에 설치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라이 총통은 "AI는 대만 경제 발전의 추진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AI가 대만의 경제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32년 전인 1992년 8월 24일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1882년 조선과 청나라가 외교교섭을 시작한 지 110년 만이었다. 이 날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서울 명동 중화민국대사관 뜰에서 열린 청천백일기 하강식에 참석한 대만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했다. 청천백일기 하강식이 끝나고 김수기 대사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보도진이 소감을 물었다. 진수지(金樹基) 대사의 대답은 "We shall come back(우리는 돌아올 것)"이었다. 현재 우리는 대만과 대표부를 설치해 두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 외교가 미국과 일본으로 기울어지면서 중국 외교당국의 우리에 대한 언급과 지적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우리가 미국, 일본과 외교 행동을 함께하는 경우에도 미국, 일본과 함께 싸잡아 비난을 한 뒤 한국에 대해서는 별도의 비난을 추가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한·미·일 3국이 외교부 차관과 국방차관들 사이의 2+2 회담을 한 뒤에는 더욱더 길고 날카로운 반응을 내놓았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당사자도 아니면서 중국과 역내 국가들 사이의 해상 항해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이 손짓발짓(指手畵脚) 다 하면서 말해도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의 확고한 반대는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반복적으로 “미국, 일본과 함께 대만 문제에 대해 제멋대로(說三道四) 지껄이고 있다.” 이는 중·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두 나라 관계의 발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면서 불편한 속내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여서 “우리는 한국이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고 행동을 신중하게 할 것(謹言愼行)을 촉구한다”고 불쾌해하면서 “실제 행동으로 중·한 관계의 대국(大局)을 잘 지킬 것을 촉구한다”면서 불편한 속내를 보여주었다.
지난해 2월에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와 지역 안전과 번영에 불가결한 요인”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는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므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不容置喙)”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험한 말을 내던지기도 했다.
32년 전에 한·중수교를 하면서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이 서명한 ‘한중수교 공동성명’ 제3항은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하여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되어있었고, 제5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되어있었다.
이 두 조항은 서로 상대방에 대해 상호 의무를 지는 조항으로 구성돼 있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중국이 유일 합법정부이고,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는 대신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의무 조항으로 밝혀놓았다. 그러나 수교 후 32년이 흐르는 동안 중국은 우리에게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라고 항상 엄중하게 촉구하면서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의무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자세는 확고한 반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는 대체로 망각한 듯이 처신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 외교당국도 망각한 듯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하는 중국의 의무에 대해서는 중국 측에 별로 지적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대만은 2022년 현재 2300만 인구에 1인당 GDP 3만3000달러가 넘는 경제적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세계 1위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를 보유하고 있고, 최근 들어서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AI 기업 NVDIA의 CEO 젠슨 황은 자신의 출생지인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 TSMC와 전면적인 협력을 할 의사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대만이 보여주는 변화는 현재 대표부 상호 설치 정도에 머물러 있는 한국과 대만 외교교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 외교도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받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도 일본 외교처럼 중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대만에 대해서도 분명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스 : 대만 신임 총통, 부총통 프로필>
제16대 총통 라이칭더(賴淸德)는 1959년 10월 6일생. 65세. 총통 겸 국가안전회의 주석. 부총통, 행정원장, 타이난(臺南)시 시장, 입법의원 역임. 타이베이 시립 건국고급중학 출신. 타이완대학 보건의학과 학사, 2003년 미 하버드대 공공위생학 석사, 2010년 타이난(臺南)시장에 당선, 국민대표 의원 겸 입법위원 역임.
부총통 샤오메이친(蕭美琴)은 1971년 8월 7일 일본 고베(神戶)에서 출생, 53세. 타이난(臺南)시에서 성장. 부모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서 미 텍사스 몽클레어 고교 거쳐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석사 취득. 주미 대만 대표, 국가안전위원회 자문위원. 민주진보당 국제사무부 주임, 4선 입법위원 역임 후, 출마 위해 외교부 사직 후 부총통 당선.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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